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텃밭을 구매했다. 우리 집 지붕의 그림자가 닫는 가까운 거리에 30평정도 되는 땅이다. 밭이 크면 농기계를 사용해야 하고 취미로 하기에는 부담이 있다.사계절 변화를 직접 느끼고 농작물과 직접 대화하면서 어려움 기쁨도 함께하고 있다. 농사 전문가가 보면 엉터리 농사지만 밭에 농작물을 키우는 것은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콩밭 고추밭 풀 매는 것이 싫어서 도시 총각에게 시집왔다는 집사람도 반찬 되는 농작물을 열심히 재배한다. 아내에게 시골 전원주택으로 귀농하자 제안했을 때 농사 기술도 없고,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고 전면적으로 반대하였는데 지금은 휴일마다 상추 고추 호박 가지 토마토를 기쁜 얼굴로 수확하고 잡풀도 매준다

텃밭에 농작물은 재배가 쉬운 것도 있고 까다로운 것도 있다. 토양 때문인지 재배 기술 부족인지 매년 실패한 농작물은 오이. 옥수수. 무. 쪽파. 부추. 배추. 열무김치 등이다. 대충 남들처럼 흉내를 내는 것은 고추. 가지. 고구마. 토란. 토마토이고, 가장 쉬운 것은 돼지감자이다. 어릴 때 고향에서는 관심이 없던 것이 요즘에 당뇨에 효험이 있다 하여 너도나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돼지감자는 번식력이 좋고 퇴비 거름을 안 해도 잘 자란다. 상추 고추 심은 밭 전체를 정복하려 달려든다. 밭도 사람 성격에 따라 깔끔하고 깨끗하게 작물을 재배하기도 하고 대충 흉내만 내는 사람도 있다, 옆에 프로농사꾼이 있으면 비교하고 모르면 자주 대화하고 배워야한다.

 식물들은 우리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베풀어 주고 있다.꽃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나무들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피부를 즐겁게 하고, 각종 열매는 입을 즐겁게 하고 영양을 공급해 준다.

텃밭 땅이 주는 의미는 계절마다 다르다.
봄에는 죽었던 생명의 부활을 경험하고 신비스러운 대자연 섭리에 종교에 대하여 신앙이 넘친다. 현미경으로 보아도 구분이 안 되는 씨앗들이 땅을 밀고 싹이 틀 때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삼 년이 지난 씨앗을 심어도 싹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농작물보다 가시넝쿨 잡풀이 생명력이 질기고 성장이 더 빠르다.

 초여름이 되면 농작물에 시련이 다가온다. 모내기와 각종 모종을 심을 무렵이면 언제나 가뭄이 매년 찾아온다. 밭에 작물 발육 시기에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난다. 생명의 처절한 몸부림. 한 방울 물이라도 고대하는 농부들 마음을 애타게 한다. 아침저녁으로 집에서 물통에 물을 날라 뿌려 주어야 한다. 산새들 맹꽁이도 목이 쉬어 울지도 못한다. 여름이 깊어지면 장마철이 시작되고 낮은 지대는 침수 현상으로 시련을 겪고 맹꽁이는 발에 물갈퀴가 없어 아침부터 슬피 운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진딧물 배추벌레 총채벌레 고추 탄저병이 생겨 농약을 할까 말까 결정해야 한다. 나는 빨간 고추를 바라지 않고 풋고추만 원해서 채소 고추에 농약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배추는 나비 유충이 자라나서 배추 잎을 먹는데 약을 하던지 벌레를 잡아내야 한다. 배추벌레가 나비 유충이라서 해서 예쁘게 봐주고 있다. 추석 지나서 10월 중순 이후 찬바람이 불면 배추벌레는 사라진다.

 상추 풋고추 가지 등을 이웃 주민과 친척, 교회에 나누어 먹으면 즐거움이 넘치고 보람이 있다. 어떤 동네 주민은 이천 원 삼천 원 만큼 상추를 팔라고 오신 분도 있지만, 그냥 드시라고 준다.  심기는 내가 심었지만 가꾸는 것은 하늘이 이슬비 햇빛을 내려주고 공기와 질소 화학 작용을 하게 한 덕뿐이다. 토마토가 빨개지면 산에 있는 참새 까치 비둘기도 눈치를 보며 텃밭에 날아온다. 이 세상은 혼자 독식하며 살 수가 없다. 벌레. 새. 사람. 곤충. 더 불어 살아간다. 장마철에는 맹꽁이가, 한여름에는 매미가 아침저녁 노래하는 텃밭이다. 땅은 차별 없이 식물들의 나무초리. 우듬지를 키운다.

 

추석이 지나면 농작물들도 황혼기를 맞이하여 줄기 잎들이 시들어간다. 들깨도 잎은 누렇게 변하고 가지는 허리가 꼬부라져 비실비실해진다. 돼지감자 꽃이 노랗게 피어 밭이 밝아지고, 고구마는 땅속에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이 무렵 기쁨을 주는 것은 호박 넝쿨인데 가을 텃밭에서 바람을 잘 피우는 놈이다. 담을 넘어 들어와서 남의 집안을 기웃거리다 주먹만 한 호박 만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도 않는다. 우리 밭 호박 넝쿨은 남의 집으로 넘어가고 숨어 있는 호박은 늙어 누런 호박이 된다. 야구공만 한 애호박이나 보름달 비슷한 호박은 피부가 윤기가 나고 사랑스럽다. 토란잎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 수분을 섭취하고 나머지는 땅에 미련 없이 버린다.

 

 조그만 텃밭에서 부처님 예수님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땀 흘려 농작물을 가꾸고 자연과 적응하며 살려면 착하고 열심히 일하고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문학을 하는 나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텃밭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시상과 언어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달러로 환전할 수 없는 영적 정신적 영감이 번개처럼 스쳐 간다. 텃밭에 나가보면 여치 귀뚜라미 지렁이 방아깨비 사마귀 여치 군단이 가을을 즐기고 있다, 나와는 무슨 인연이 있을까 생각한다. 이놈들은 소유 경계가 없는데 인간들은 경계가 많다. 땅을 측량하고 울타리를 치고 국경을 만들고 네 것 내 것을 확정하기 위해 끝없이 싸운다.(그래서 민법이 어렵고 판례가 복잡하다)

가을 무서리가 내리면 엽록체 식물은 모두 생을 마감한다.
고구마 줄기 고춧잎 호박 토마토 깻잎 모두 하얀 밀가루 같은 무서리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간다, 눈 덮인 텃밭에는 고요가 흐르지만, 땅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겨울잠을 잔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가을걷이를 끝내야 한다. 자연은 불인하다 했다.왕성했던 모든 농작물이 밭에서 사라진다. 내년 농사를 위해 겨울엔 거름을 준비해야 한다. 시장에 나가 두붓집에서 두부피를 수거하고, 한약방에서 한약 짜고 남은 찌 거기와 농협에서 파는 퇴비를 섞어 발효시키고 참 기름집에서 깻묵도 얻어와서 밭에 뿌려준다. 텃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름 만들어 주고, 씨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다.

<주> *나무초리 : 나뭇가지에 가느다란 부분 *우듬지 :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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