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우리는 대장들녘 논길 위에 모였다.

 매주 금요일마다 '움틈' 모임에서 만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도 시냇물처럼 쉬지 않고 늘 수다가 흐른다.  오가는 수다 속에 왕왕 '대장들녘'이 등장했었다. 7년째 부천에서 사는 내가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평면적 사실이었다. 재두루미 배지와 부천의 바람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진 한 장, 지난 지방선거 때 홍보물 한 쪽에 쓰여 있던 친환경 산업단지로 개발. . . 정도. 친환경과 산업단지라는 단어의 조합이 어색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움틈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장들녘은 금개구리, 재두루미가 살고, 내 친구가 사는 마을이 있고, 짬을 내어 작물을 키우는 가족 텃밭이 있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비효율적인 땅덩어리를 아까워하고,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를 지키려고 하는 '대장들녘'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졌다.
 그때 누군가가 "대장들녘을 그려 볼까!"하고 한 마디를 툭 던졌고 모두 고개를 끄덕했다.

 대장들녘에서 만나기로 한 아침.
막상 가려 하니 대장동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모임 카톡으로 주소 하나가 올라왔다. oo 동 ooo번지.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어느새 창밖 풍경이 바뀐다. 목적지까지는 사방에 논밭과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길로 접어들어 조금 더 들어가야 했다. 도착한 곳은 '대장들녘 금개구리 가족농부'가 우렁 농법으로 벼를 공동경작을 하는 논이었다.

 

 "어서 와. 대장동은 처음이지?"
 멋지게 차려입은 허수아비가 먼저 반겨준다. 우리는 논두렁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벼들이 탄력 있게 누웠다 다시 일어났다. 길가에 있는 풀들도 바람에 흔들리며 제각각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데, 울 엄마는 잡초라면서 다 뽑아버렸을 거야." 갈대꽃을 만지며 혜영 샘이 말한다. 정말 그랬다. 노랑, 분홍, 주홍꽃을 암만 피워도 벼농사에는 방해꾼인 잡초에 불과했다. 이곳에선 누구의 미운털도 박히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걷는 길목마다 의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청개구리, 참개구리, 메뚜기, 방아깨비, 고추잠자리, 각박시나방, 주홍나비, 우렁이. . . 논두렁을 한 바퀴 돌고 그림 도구를 꺼내 들었다.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드로잉북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조금은 막막해진다.

  우리는 대장들녘의 한 조각을 스케치하고, 걷고, 보고, 바람을 느끼고 돌아왔다. 나는 그날 찍었던 사진 한 장이 마음에 남아 그림으로 그렸다. 대장들녘은 나에게  벼가 알알이 익어가는 가을에 바람결을 따라 벼가 눕던 논길을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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