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일본이 고향인 유우코 산모님의 산후관리를 의뢰 받았습니다. 가끔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에서 온 결혼이주민 산모님들을 만날 때면 말이 통하지 않아 만국 공통 언어인 손짓과 발짓으로 소통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유우코 산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저절로 긴장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과거사 문제로 감정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의 산후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심장이 콩닥콩닥 하였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유유코 산모를 만난 순간, 괜한 걱정을 했다는 쑥스러움이 들었습니다. 유유코 산모는 우리말도 잘했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나보다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이야기와 영화<귀향>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꽃피는 춘삼월에 쉼터에 계신 김복동 할머니에게 아기를 보여주러 같이 가자고 유우코 산모와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김복동 할머니가 타계하셨기 때문입니다. 유우코씨도 소식을 접하고 많이 슬퍼했을 거예요."

 

 희망나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산모·신생아의 건강관리 지원사업인 ‘부천아가마지’ 소속으로 일하는 11년차 건강관리사 김미용(54)씨가 들려준 이야기다. 강원도가 고향인 김미용씨의 원래 이름은 김미영이었다고 한다. 약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얼큰하게 한 잔 걸치고 출생신고를 하러 면사무소에 들렸다. 아기의 이름을 묻는 직원의 말에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김미~요이~ㅇ이라고 잘 못 발음하는 바람에 이름이 ‘미용‘이 됐다고 한다. “그래도 미용이라는 이름덕에 사람들이 잘 기억해줘서 좋아요.”

산모와 아기를 돌보러 가는 날은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밝은 표정과 꾸밈없는 마음으로 아기와 산모를 만나기 위해서다. 건강관리사는 아기나 산모의 위생관리나 먹는 것 등을 통해 건강을 돌봐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말벗도 되어주고 아이들을 키운 경험이나 지혜들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고 한다.

“요즘 산모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낳고 쉬는 경우가 많아요.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모습에서 아이를 낳고 환자처럼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울해하는 산모도 많아요. 그런 산모의 심리상태를 잘 파악하고 다독여줘야 전문가라 할 수 있죠.”

건강관리사를 파견하는 업체는 많아진 반면 저출산으로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박한 수입조차 불안정하다. 나가야 할 지출을 메꾸기 위해 식당에서 접시도 닦고 작은 하청업체 등에서 알바도 한다. 그래도 아기와 산모를 돌보는 전문가라는 건강관리사로서의 자부심은 놓지 않는다.     
김미용씨는 참 부지런하다. 일하는 틈틈이 여기저기 활동하며 많은 배움을 구한다. 콩나물신문에 홍보된 것을 보고 허준약초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약초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또 부천시비정규직센터에서 진행한 몸풀기 수업에서 꾸준히 운동하면서 몸풀기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그밖에도 도시농부 자격증, 장애인 지원활동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올 4월에는 원예치료사 시험에도 도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내동지구대 자율방범 순찰대원으로 마을 야간순찰도 한다.

 

“주변사람들이 그 많은 것들을 배워서 뭘 하려고 하느냐 물어요. 내가 배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복지사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예요. 사회복지사의 업무가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지금 배우는 것들이 나중에 사회복지사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한마디로 인생이모작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내가 사는 동네에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인생이모작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안한 나의 생애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새롭게 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