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는 청명과 입하 사이에 들어 있으며 그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절기이다. 곡우엔 봄비가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때문에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하며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속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위하여 볍씨를 담는데, 이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를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였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농사는 생계와 직접 연관되는 중요한 수단이고 삶의 방편이다. 생존을 좌우하는 농사의 시작은 봄이고, 봄은 벼농사로부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신성함을 요구하는 농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순수를 요구한다는 전제하에서 인간의 부정은 금기사항이고 생존과 직결되었다.

지금 공권력의 행태가 본질적 가치를 지향하고 그에 부합하는지를 곡우에 다시 생각해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도 어지럽고 복잡해가는 신산한 삶속에 처한 시민의 입장으로서 심히 불안하고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다고 되뇌는 것이 일상이다. 중심과 가치가 전도되고 공사의 구분이 모호하고 선후와 기준이 애매함을 겪는 것에 미숙함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전적으로 공직(公職)이란 1.관청이나 공공 단체의 직무이거나 2.관청 또는 공공 단체의 직무를 맡아보는 것이고, 공직(供職)은 1.관청 또는 공공 단체의 직무를 맡아보거나, 2.직무를 성실히 행함을 일컫는다.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가치의 정립 여부를 돌아봄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직접적인 결정과 결과를 초래하는 담당자이기 때문이고 당사자인 이유이다. 공직자의 성실은 기본이고 상식이기도 하다.

공직 소명의 절대적인 조건은 신의(信義)다. 말 그대로 믿음과 의리다. 공자는 치국의 요소로 국방보다 생계보다 중요한 제일의 항목으로 신의를 꼽았다. 백가쟁명의 혼란한 시절에도 제일의 인간관계를 믿음으로 꼽은 것은 의미가 크고 깊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 큰 공명(共鳴)은 울림을 준다. 어느 역사가는 국가를 지킨 중심 세력은 관군이 아니고 의병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시민은 포용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시민이 공직자를 우려하는 입장이고 국가를 걱정하는 추세다. 정기적으로 치르는 시민의 주권행사인 선거조차도 이제 곤고한 일상이고 불신의 건널목이 넘어 버린듯한 느낌이다. 어쨌든 불행한 일이다. 이 시대에 믿음이 나로부터 시작되고, 의리가 공직으로 비롯된다고 가정하면, 다가오는 곡우를 맞아 한 해의 농사를 위한 볍씨를 부정으로 그르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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