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돈가스 마니아였던 사람이 채식을 시도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황윤 감독은 무엇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을까?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때 문득 고기가 아닌 돼지를 직접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돼지를 찾아 나섰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 가득 들어찬 돼지를 목격하면서 딜레마에 빠져든다.

한국에서는 돼지 농장의 99%가 공장식 축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돼지는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 빠르게 살을 찌우고 팔려 죽는다. 돼지의 일생에 돈이 되지 않는 부분은 철저히 배제된다. 되도록 저렴한 사료를 먹어 식비를 줄여야 하고, 한정된 공간에 많은 돼지를 키우기 위해 되도록 좁은 공간이 제공되어 돼지들은 몸을 돌리지도 못한다. 돼지의 탄생도 자연스러운 교배가 아니라 인공수정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한국과 달리 주요 선진국은 돼지가 몸을 돌리지도 못하는 감금틀인 스톨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 28개국(2013년부터 금지)과 미국(플로리다주 2008년까지 단계적 폐지, 캘리포니아주 2008년부터 단계적 폐지, 그 밖의 여러 주가 폐지에 동참) 등의 국가가 공장식 축산이 아닌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은 무엇 때문에 공장식 축산을 금지하고 있을까? 우선 구제역 사태에서 보듯이 밀집 사육은 많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좁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돼지들은 병에 취약하게 되고, 전염병의 확산도 빠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항생제를 많이 투여하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인간의 몸으로 들어온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에서 황윤 감독은 자신이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던 영상과 어미 돼지가 새끼를 낳고 젖을 물리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인간이 안전하게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들의 복지를 살피며 키워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와 같은 생명으로서도 한번 바라보자는 것이 아닐까? 그가 보여주는 화면 속 돼지들은 자신들이 밥을 먹는 곳에 대소변을 누지 않는다. 날이 더울 때 물을 뿌려주면 행복해하고, 농장 주인이 새끼 돼지들을 거세하려고 하면 필사적으로 새끼들을 짚더미 속에 숨기고 저항한다.

지난 5월 2일 부천녹색당의 당원들과 “문화로 나누는 녹색” 모임을 가졌다. 영화나 책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녹색당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 모임이다. 이날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본 감상을 나누었는데, 나는 채식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중단한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약간의 조소를 섞어 ‘간헐적 채식’을 한다고도 말한다. 머리로는 채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공감 능력도 줄어드는 것 같다. 돼지고기를 앞에 두고 이 영화를 떠올리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회사 구내식당에서는 고기를 빼고 나면 반찬 가짓수가 얼마 되지도 않아 매번 갈등에 빠진다. 회식 장소를 정할 때는 그냥 입을 다문다. 이것이 나의 딜레마이다.

돈가스 마니아였던 황윤 감독은 어떻게 채식을 했을까? 식탁에 놓인 고기로서 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돼지를 직접 보고 손으로 만졌으며 그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대상과 친해지면 생명으로서 느껴지는 게 당연할 테니 말이다.

나도 황윤 감독처럼 돼지들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돼지를 직접 만질 기회는 가지기 힘들겠지만, 살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자주 떠올려야겠다. 풀숲을 마구 뛰놀던 새끼 돼지들을 떠올려야겠다. 그러다 보면 식탁에 놓인 고기를 봐도 그들이 먼저 떠오르겠지? 태어나자마자 젖부터 찾는 게 아니라 어미와 먼저 인사를 나누던 새끼 돼지들이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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