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숲에 왔습니다. 아이들이 숲에서 뛰어 놀고 있습니다. 아이 하나가 흙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 가만히 옆에 앉아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뛰어놀 던 아이들이 지나가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달려와 “뭐해요?”, “뭐해?”라고 저와 아이에게 묻습니다. 아이는 물음에 답하기보다 계속 그림을 그립니다. 물어본 아이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그려진 집 모양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창문에 손으로 의견을 답니다. 집 그림의 창문은 네모난 모양이었습니다. 네모난 창문은 비어있었지만 아이는 창문에 십자가 모양의 줄을 그으며 “이게 창문이야”라고 합니다.

 

언제인가 아이들에게 전화기를 그리라고 하면 직사각형으로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른들은 전화기를 그리라하면 구부러진 모양의 수화기를 그릴 것입니다. 지금의 전화기를 보면 대부분 직사각형이 틀림없습니다. 보고 아는 대로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집의 창문을 네모로 그리지 않고 십자가를 넣어 그렸을까요? 아이들은 직접 보고 느낀 대로 사는 것도 있지만 남이 가르치고 배운 대로 사는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도 간접 경험을 통해 이미 아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는 선입관과 편견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번 주입된 간접 지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간접 경험을 바꿀 기회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만이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의 고 신영복 선생님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교도소에서 목수를 만났다고 합니다. 당신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고 기둥 바닥 순으로 그렸는데 목수는 아니더랍니다. 목수는 바닥부터 주춧돌을 그리고 기둥, 지붕 순으로 집을 실제 짓는 순서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이 시선의 차이가 사람의 다양성을 만들고 함께 여럿이 살아가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다양성이란 긍정적 관점 말고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면 목수의 시선은 실제적이고 선생님의 시선은 관념적입니다. 직접 경험한 목수는 실제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간접 경험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뿐입니다. 이 차이는 집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을 만날 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 발달과정을 보면 아동까지는 신체적 감각적인 부분이 초등학생까지는 심리적 부분이 청소년은 정신적 지적인 부분이 발달한다고 합니다. 연령별 발달과정에 따라 아이들의 초등 시절까지는 교육보다 놀이로 직접 경험을 쌓아야 적합한 활동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놀이보다 교육으로 지적 경험을 주로 쌓아 가고 있습니다. 교실 안 ‘교육’은 간접적이고 교실 밖 ‘놀이’는 직접적입니다. 교육은 수업시간에 길게 이뤄지고 놀이는 쉬는 시간에 짧게 이뤄집니다. 교육은 주입식이지만 놀이는 상호소통 합니다. 교육은 암기해 기억되고 놀이는 느낌으로 추억이 됩니다. 기억은 감정과 느낌이 없지만 추억은 희로애락을 포함합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과 정상인의 차이점을 판별 할 때 바다를 상상하며 이야기 해보라고 한답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파랗다.’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은 사람은 해변, 물놀이, 연인, 가족, 아이들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는 행복의 수준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겁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와 미래를 대비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없는 아이는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를 그리지 못합니다. 미래는 창의성의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유아부터 초등까지의 기억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직접 경험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직접 경험을 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다양한 체험을 하셔도 됩니다. 여행을 많이 다니셔도 됩니다. 식탁에 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맛 나는 식사를 하셔도 됩니다. 많은 직접 경험 중에서도 더 넓은 다양성과 직접 경험을 보여주는 자연 속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집 근처에 작은 공원과 숲이 다양한 이야기로 언제나 부모님과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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