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 작가의 생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남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차로 거의 하루 종일 달려 가야하는 먼 거리이지만 그래도 작가가 생전에 늘 그리던 고향이고 또 작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대이기에 문학기행 팀의 연락을 받고는 기꺼이 합류를 결정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생가 방문의 설렘은 엉뚱한 곳에서 깨져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작품은 여러 편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그 중 한 편의 촬영 세트장에 잠깐 들렀을 때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내심 영화 속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상상했던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간단히 기념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차에 올라와서 보니 바로 옆 논 한 가운데 떡하니 축사(畜舍)가 버티고 서 있었다.

소, 돼지 등 육류 소비량이 꾸준히 늘다보니 벼농사를 짓던 논에도 하나 둘 축사가 들어서고 있다. 작년 겨울, 장항선 열차를 타고 홍성, 광천, 대천 등 충남 서해안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저기 들판에 들어선 축사가 눈에 띄었다. 쌀농사보다 소, 돼지를 기르는 것이 소득이 낫기 때문에 수백 년 된 문전옥답이 하루아침에 축사로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러면서도 몇 해 전 모 방송국에서 제작 방영한 「분뇨 사슬」(전주MBC 제작 『육식의 반란』 제2편)이라는 프로그램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공장식 축산은 이미 선진국에서 그 폐해가 입증된 바 있다. 아무리 시설에 완벽을 기한다고 해도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분뇨와 오수는 인근의 땅과 하천을 오염시키고, 악취는 주민들의 생존마저 위협한다. 「분뇨 사슬」은 1993년 사양길에 접어든 담배산업을 대신해 대규모 공장식 축산을 받아들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강에는 물고기의 사체가 즐비하고 들판 곳곳에는 악취가 진동하는 오수 저장시설들이 호수처럼 펼쳐져 있다. 가축의 분뇨는 비료를 만들어 재활용한다고 하나, 항생제 범벅인 비료는 오히려 땅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다. 주민들과 축산업자 간의 마찰도 심각하다. 악취와 해충 때문에 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살 수 없는 주민들이 축산업자를 찾아가 항의도 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무시한 살해 협박뿐이다. 방송은 멀리 미국의 사례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또한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꾸준히 증가하는 육류 소비량이다. 미국 연방농무부(USDA/FAS)의 통계를 보면 OECD 주요 회원국들의 연도별 육류소비량은 대부분 감소추세이거나 답보상태를 보이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요가 증가하다보니 공급을 맞추기 위해 대규모 공장식 축사가 늘게 되고, 늘어나는 축사만큼 우리의 땅과 하천은 오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모두가 값싸고 질 좋은(?) 고기에 취해 있는 사이 환경은 점점 파괴되어가니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될 게 뻔하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어떻게든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방송사들은 앞 다퉈 먹방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관련 협회나 기업에서는 대대적인 광고로 소비를 부추기고, 정부는 수수방관, 팔짱만 끼고 있으니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육류소비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수요가 증가하니 공급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식 논리이다. 거기에는 환경권과 생명권이라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 파괴되어가는 환경을 보고도 침묵해야하는 이 육식의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낙관론자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인조계란이나 배양육 같은 다양한 종류의 대체 축산물이 개발되면 환경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하지만, 고기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집착이 배양육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육식이 필요하다고는 해도 그러나 지금과 같은 고기 열풍, 고기 집착이 계속될 경우 야기될 환경의 파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의식이다. 오늘, 식탁에 앉아 우리 모두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고기를 섭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직장의 회식이나 야유회는 물론 가정의 식탁에서 과도한 고기 소비를 줄여나간다면 급증하는 공장식 축산이 줄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환경도 되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축들에게도 최소한의 생명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마취도 없이 수퇘지의 고환을 떼어내고, 닭의 부리를 잘라버리는 생명에 대한 폭거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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