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각지 않게 햅쌀 한 포대를 분에 넘치는 선물로 받았습니다. 집에 와서 바로 페트병에 나누어 담으면서 보니 쌀알이 여간 잘 생긴 게 아니었습니다. 우유빛 알갱이 하나하나가 탱글탱글할 뿐만 아니라 싸래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벼가 잘 영글어서 청치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덜 영근 청치가 없으니 도정과정에서 깨지는 쌀알이 없었다는 걸 반증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벼농사를 해보니, 쌀을 보면 농사가 어땠는지 조금 알거든요. 밥을 지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밥 냄새와 함께 밥맛도 일품이었습니다. 모내기 때 손을 보탰대서 그리고 모를 낸 후 새벽에 버스를 타고 두 번인가 논에 다녀왔었습니다. 제초제 대신 우렁이가 왕성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논바닥에 피나 풀이 보이지 않았고 화학비료를 거의 쓰지 않아서 벼의 색깔도 꽤나 건강해 보였습니다. 이 쯤 되면 농사는 잘 되기 마련이죠. 물론 내내 농사를 봐 주신 논주인님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 쌀은 부천YMCA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이 지난 여름에 대장동의 논을 빌려서 모내기를 하고 가꾼 열매입니다. 물 논에 빠져 가면서 못줄을 띄우고 어린이들이 엄마아빠의 사이에 끼어 스스로 모를 심었습니다. 집집마다 싸온 도시락을 펴놓고 유쾌한 점심을 나누었고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죠. 듣기로는 지난 가을 태풍 링링이 왔을 때 벼가 쓰러져 엎쳤답니다. 대개 벼가 엎치면 땅에 닿은 알곡은 싹이 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덜 영그는 알곡이 많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벼가 잘 영글어 주었고 해와 바람과 물은 협력하여 잘 생긴데다 맛있는 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의 정성을 보아온 자연의 응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9년 대장동 벼농사에 참여한 우리 어린이들의 애틋한 경험이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피드백 되어서 우리의 미래 모습을 돌보게 될지 알 수 없어 더욱 값진 농사였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저는 부천역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대장들녘지키기 1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긍정적 효과가 있겠지만요, 대장들녘을 지금 상태 그대로 꼭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부천의 환경을 싸잡아 나쁘게 합니다. 지속적인 인구의 집중화는 여러 가지 사회비용을 가중시킵니다. 이런 비용의 대부분은 외부화 하면서 주민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부천의 과밀화는 그 만큼 지방의 과소화를 초래합니다. 가뜩이나 피폐해가는 지방을 더욱 어렵게 하고 도농간 격차를 더 심하게 만듭니다. 이는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은 국토와 사회로 이어집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마저 물 담긴 논을 잊어버릴 것이고 그나마 가까이의 쌀농사를 손으로 만져볼 기회조차 잃을 것입니다. 백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살고 있는 부천에서 이 남은 대장들판은 너무너무 소중한 자연자원입니다.

우리 세대가 대장들녘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이유가 이렇게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꼭 하나 더 얹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쌀 때문입니다. 계산해보니 비록 3%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 만큼이라도 우리 시민이 먹는 쌀을 부천 안에서 자급한다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외부 의존적 삶의 방식은 윤리적이지도 않고  고비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먹는 쌀을 일부이긴 하지만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탄소를 덜 배출하며 충당하기 위해 대장들판의 논을 지금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줄이는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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