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 사람이 가득 했어요.
함박 소소하게 결혼식을 하려고 했는데 일이 점점 커졌어요. 하다 보니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고 할 수가 없어서, 결국 가족을 제외한 모두에게 다 알리게 됐어요.
슬리퍼 보통 결혼식하면 기존에 있던 두 가정의 연장이나 확장의 의미로 치러지잖아요. 그런데 우리 결혼식엔 그게 없었어요. 사실 그런 의미로 치를 수 있었다면, 부모님 및 직계가족만 모시고 올리고 싶었어요. 근데 그럴 수 없었고, 더욱 전혀 다른 결혼식을 기획하고 싶어졌어요. 전통적인 의미의 결혼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예 새로운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결혼식 이름을 가족의 탄생이라고 한 이유도 “태어난 가족의 질서에 얽매여서만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혈연을 넘어서, 가족 너머의 가족을 지향하는 의미였죠. 근데 그런 가족과 관련된 절차를 빼니까 결혼식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함박 그래서 이참에 공동체를 개방해 같은 동네에서 함께 사는 주민들에게 공동체를 소개하고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염려를 가진 이들의 궁금증도 함께 해소해보고 싶었어요. 애초에 공동체 차원에서도 공동체 안의 결혼은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고……. 그래서 공동체 앞 놀이터로 결혼식장을 잡고, 공동체 공간을 소개하는 이벤트도 만들었어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싶었어요. 비록 시부모님은 반대하시지만, 결혼이 축복임을 누리고 싶었어요. ‘공동체가 뭐지?’부터 시작해 ‘좀 더 생각해보는 것이 어때?’, ‘시모님은 허락하신거야?’ 등등 저희의 결혼을 우려하는 지인들이 많았거든요. 행복한 모습으로 안심 시켜주고 싶기도 했어요.

▲ 결혼식 한켠에서 아이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동네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뛰어놀기도 했어요. 두 분이 서 있던 바로 밑에선 카드놀이도 하더라고요.
함박 그렇게 되길 바랐어요.
슬리퍼 약속을 했어요. 아무도 아이들을 제재하지 말자고.(사실 놀이터는 아이들의 공간이니까. 그 아이들의 공간을 우리가 빌린 거였잖아요.)
함박 그리고 찾아오는 주민분들에게도 대접하자고 말이죠.
 
두 분에게 결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결혼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함박 이 질문이 난감했어요. 저는 공동체에서 아이들과 같이 살다가 슬과 결혼하면서 1년간 휴식기를 줬거든요. 결혼에 대한 정의는 글쎄요, 고민이 많고요. 앞으로도 풀어야 할 고민이 많아요.
슬리퍼 결혼에 대한 의미를 고민한 건 우리세대 때부터 였어요. 대중문화에도 반영됐죠. 옥탑방고양이나 아일랜드 같은 드라마에서 가부장제의 몰락, 새로운 가정상을 그려냈어요. 그걸 보면서 그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 공동체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었어요. 특히 공동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가족이에요. 하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진 공동체는 일본지하철에서 수염 긴 아저씨가 독가스를 살포하고, 1Q84와 같은 모습이죠. 최악의 이미지만 있잖아요. 인문주의에서는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중들에게는 ‘공산당이야? 이단이야?’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어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의 이해를 끌어내는 것이 먼저겠지요. 결혼은 한 사람이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몸을 담고 있던 세계를 떠나보내는 의식과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의식을 정리하는 게 결혼식이라고 봐요. 아무런 반성없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의식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왜곡된 거죠. 결혼이 악습화 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러니까 결혼을 안하죠, 좋지 않으니까. 결혼의 참 의미를 살려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주길 바랐어요.
아, 달라진 게 있다면 강아지와 함께 사는 거예요. 강아지집을 밖에다가 빨리 만들어주고 싶은데. 강아지는 좋아하는데 강아지와 사람의 삶이 섞이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강아지는 강아지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함박 우리 사이에 꼭 파고 들어와요.
슬리퍼 그렇게 파고 들었을 때 저한테 오면 예쁜데, 나를 피해 함박에게 가면 서운하더라고요. 처음엔 저를 경계하더라고요. ‘(강아지가 저를 보고) 쟤가 왜 자꾸 내 집에 들어오는 가.’질투했어요. 서로 쳐다보면서 ‘감히, 니가.’이렇죠.
함박 장난이 아니고 진짜예요.
슬리퍼 진심으로, 서로 생각하는 게 ‘나보다 아랜데.’
 
 
이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도 좋겠다-고 느꼈던 계기가 있었나요.
슬리퍼 연락을 하고 처음 만났을 때요. 그때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만난 느낌을 가만히 음미하면서 덤덤하게 생각했었죠.
함박 이런 말 저도 처음 들어요.
슬리퍼 이 사람은 내가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으니까 오히려 아닌가보다 하고 불안해했다고 하더군요.근데 전 같이 사네 안 사네를 놓고는 고민한 적이 없어요. 시기는 고민했지만.
함박 저는 언젠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저를 뒤에서 안아준 적이 있어요. 그 순간 내 삶이 위로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단순히 이 상황을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온전히 안아주는 듯한 느낌. 그때 이 사람과 함께해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슬리퍼 의외로 로맨틱한 답변을 하시네요. 나 다시 말 해야 되나?

이번 결혼식에 만족하세요? 만약 다시 결혼식이 주어진다면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으세요?
슬리퍼 다시 하게 된다면 직계가족분들을 모시고 싶어요. 덕담도 듣고. 그런 정도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방식으로 해석해서 결혼식을 했으니까…. 부모님세대에 양보해서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죠.
함박 이번 결혼식에서 우선 메이크업에서 만족하지 못하고요. 급하게 준비했던 터라 도와주는 분들과 소통을 못했어요. 필요하면 바로 섭외해서 오다보니 메이크업도 전통혼례를 생각하고 오셨어요.
슬리퍼 제가 봤을 땐 그분도 하고 싶은 거 하고 가셨어요.  (함께 웃음이 터진다.)
함박 맞아요.(웃음) 순수한 청년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오셨는데, 그걸 이루고 가셨어요. 연배가 있는 분들이라 우리 결혼식을 보고 놀라셨죠. 부모님을 모시고 단촐하게 진행하는 결혼식으로 생각하셨던 거죠.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메이크업을 하고 가셨어요. 결혼식을 빠르게 진행하다 보니까 예상 밖의 비용이 소소하게 발생했어요. 그런 비용까지 고려했으면 좋겠고.
  이번 결혼식을 통해 마을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희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간혹 주민분들과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꺼려하실 때도 있었거든요. 공동체 생활을 한지 10여년 만에 마을 주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우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주민분들께 식사대접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슬리퍼 실제로 이름 모를 주민들에게 축하와 후원금을 받기도 했어요.
 
언젠가는 결혼을 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슬리퍼 자기 삶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일생일대의. 우리는 대부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약한 시기에 그런 결정을 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함박 정말 결혼을 원한다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놀이터에서 초만 들어도 결혼식이 될 수 있는 거죠. 또, 우리는 이렇게 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어.’ 라는 오만을 떤 건 아니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었어요. 그저, 우리의 소망을 따른 우리의 선택이었던 거죠.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정말 결혼을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 일 수도 있겠네요.
 
여담이지만, 우연하게도 전주에서 마주쳤어요. 신혼여행을 전주로 가신건가요.
함박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 가볼까?’하다가 ‘전주가 좋겠다.’한 거죠. 그래서 전주 검색해서 갔어요. 국내자유여행. 일주일간 이곳저곳을 다녔어요.
슬리퍼 게으름을 피우면서 여행을 다녔어요. 출발도 결혼식 다음 날 아침에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자느라고 늦었어요. 결혼식에서 박터트리기가 있었어요. 반납해야하는데 그걸 두고 갔어요. 반납하고 출발했죠. 춘천에 밤 10시에 도착했어요. 춘천에 친구들이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노트북으로 검색해 다음 여행지를 선택하고. 원주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강릉에 갔다가 지친거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데 이건 전혀 게으른 게 아니었어요.
함박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돼요.
슬리퍼 자꾸 12시가 되면 나가라고 해요. 4시까지 자고 싶은데. 멀리 돌면 다시 돌아오기 싫을까봐 전주로 갔어요. 전주도 난감했던 게 아무런 정보없이 한옥마을로 갔어요. 한옥마을은 밤 10시면 문을 닫더라고요. 게으름을 부리다보니까 저녁을 계속 굶게 되는 거예요. 밥먹으러 밤 9시에 나갔는데 문을 닫고 있으니까. 굉장히 난감했어요. 양파도 사기당했어요.
함박 전주 양파가 맛있대요.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양파를 부쳐달라고 하셨어요.
슬리퍼 시장에 갔더니 양파가 쌓여있더라고요. 그래서 양파를 택배로 부쳐달라고 했어요. 함박은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저는 전주에서 부쳐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돈을 드리고 아무런 정보도 받지 않고 온거죠.
함박 택배비 때문에 계좌번호만 받아왔어요.
슬리퍼 근데 제가 봤을 때는 그분들이 돈을 떼어먹은 게 아니고 까먹은 거 같아요. 양파가게주인이 아니고 주인 친구분이라고 잠깐 계셨거든요. 그 친구분이 당혹스러워 했거든요. 주인에게 전달이 안된 거 같아요.
함박 신혼여행에 돈을 많이 쓰는 것도 그랬고, 좀 색다르게 다녀오고 싶은 열망은 많았어요. 외국 공동체 탐방을 다녀오는 게 어떨까, 베트남에서 사회적기업으로 활동하는 친구가 있는데 거길 가는 게 어떨까 했는데 지치니까 쉬고 싶은 거였죠.
슬리퍼 결혼식 3일 전에 결혼식은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 하다가 해외 탐방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권은 일주일 뒤에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 신혼여행

신혼여행은 어땠어요.
슬리퍼 운전을 많이 했습니다.
함박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풀었어요. 양가부모님을 모시지 않고 결혼식을 한 건 자의적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그랬던 것도 있었어요. 마음 한켠에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떠난 신혼여행이었죠.
슬리퍼 해방감에 떠난 신혼여행이 아니라, 잠깐 휴식을 위한 여행이었어요.
함박 신혼여행가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던 거 같아요. 슬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 행복하신가요?
함박 아….
슬리퍼 지금 행복하시잖아요. 그런 의미인 거 같아요. 기쁨은 잠시고… .(웃음) 전에 김연아가 금메달 따고 그런 말을 했어요. 역시 뭘 하나 이겨낸 애들은 그런 말을 하는 구나 싶었어요.
함박 어떤 말을 했었나요?
슬리퍼 ‘기쁨은 잠시고, 또 앞으로의 훈련은 남아있고.’ 되게 의연하게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거야.’ 누가 나한테 좋은 일이 있고 나서 좋냐, 안좋냐를 물어보면 저런 식으로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중요한 거고.
함박 행복? 행복? 행복한 지는 모르겠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좋아요. 그런 사람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만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고 다투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산다는 함박과 슬리퍼. 함박은 부족하고 못난 자신을 받아준 슬리퍼에게 고맙다고 한다. 슬리퍼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면서도 개똥 치우는 게 제일 힘들다고 꿍얼거린다. 함박과 슬리퍼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슬리퍼 부케를 받았던 친구가 저한테 해준 말이 있는데, ‘건강이 1번입니다’였어요. 건강이 1번입니다. 건강하시라고요. 만수무강하고.
함박 할 말이 딱히 없네요.(웃음) 슬이 공동체적인 삶을 꿈꿨지만 이곳에 들어온지는 얼마 안됐어요. 이 안에서 신혼을 꾸리기도 했고. 그래서 자기 시집살이 한다고 말하거든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맨날 투덜거린다고 구박했는데, 구박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집살이의 고통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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