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사일구 민주화운동가념사업회 기획 / 윤태호 만화

 

21대 총선이 막 끝났다. 국민의 선택 앞에 후보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역구, 초반 판세를 뒤집은 지역구, 박빙의 리드로 날이 새도록 당선이 확정되지 않은 지역구 등이 적잖아 날밤을 샜다는 분들도 많았다. 선거법 개정 이후 첫 선거이고 논란 속에 소위 위성 정당인 비례 정당의 등장 등은 개인적으로 21대 총선에 더욱 관심을 갖게 했다. 동시에 현 여당이 과반 이상 얼마나 많은 의석을 차자할 것인가도 궁금했다. 결과는 여당의 대승이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먼저는 코로나19에 대한 현 정부의 탁월한 방역 대응에 많은 점수를 주지 않았나 싶고,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야당에 대한 기대감의 부재가 결합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결국 국민들의 선택은 현 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대였다. 이제 정부와 여당, 새로운 21대 국회는 대승이라는 축배에 취하기보다 대승이 주는 엄중한 책임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기대와 실망은 언제나 비례하기 때문이다.

나19로 인한 팬더믹 상황에서도 무사히 치러진 선거는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전 세계의 찬사와 함께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사회의식 수준을 보여줬다. 어느 나라, 어느 국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한민국은 국가적 어려움 앞에 팔을 걷어붙이고 단결한다. 특별히 대의민주주의지만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있어서는 투표뿐 아니라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내며 직접적이고 참여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적극 표출한다. 가깝게는 2016년 가을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내 ‘촛불 혁명’이 있다. 촛불 혁명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면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고 결국에는 역사를 바꿔낸 변곡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들이 독재와 싸우며 불의에 저항했던 변곡점의 첫 함성은 4.19 혁명이 아닐까 한다. 물론 앞선 항쟁의 몸짓과 소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실제 역사적 체험의 범주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민주화 혁명은 4.19 혁명부터이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 은사님들이 4.19 혁명의 주인공이셨기 때문이다.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은 초등학생 때 뉴스를 통해 지켜봤고, 6월 항쟁은 고등학생으로 서울역, 시청 거리에서 시위대에 참여했었다. 이어 민주, 통일의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시대를 거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2016년 촛불 혁명은 기존의 집회, 투쟁 방식과 달라졌다. 토요일이면 온 가족이 광화문 광장에서 새로운 집회 문화를 경험하면서 민주 시민의 몫을 감당하며 시민 의식을 아이들과 함께 배웠다.

창비 출판사가 자랑스러운 한국의 민주주의를 만든 가장 가슴 뛰는 네 장면을 만화로 그려냈다. 제주 4.3을 그린 <빗창>, 4.19혁명의 <사일구>, 5.18민주화운동인 <아무리 얘기해도>, 6.10민주화 항쟁의 <1987 그날>이다. 그 가운데 두 번째 4.19혁명의 <사일구>를 펼쳤다. 만화가 예상과 다르다. 4.19의 역사적 배경과 여러 사실들 그리고 4.19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는 역사 만화가 아니다. 애당초 <사일구>는 기록된 역사를 전달하는데 관심이 없다. 대신 그 역사의 현장을 오롯이 몸으로 살아내신 우리 아버지의 인생이 있고, 아픈 몸에도 태극기 집회에 나가시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있다. ‘1960년 4.19혁명은 자유당의 독재 정권을 축출하고, 제2공화국을 출범하게 민주화운동’(베이직 고교생을 위한 국사 용어 사전)이라는 설명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다. <사일구>는 오늘의 ‘촛불’이 그 시대를 향해 묻고 싶었던 말, 허나 차마 묻지 못했던 말, “왜 그러셨어요?”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다. 책을 덮으며 광화문 촛불 속에 서린 4.19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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