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 10

 벌써 40년도 더 전 일이다.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온 기타 연주곡이 너무 멋있어서 무작정 기타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싸구려 기타를 하나 구입하기는 했는데,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고3 수험생이라 음악학원에 가기도 그렇고 친구 어깨너머로 겨우 코드 몇 개 배우다, “아, 나는 정말 음악에 재능이 없나 보다.” 하고는 금방 때려치우고 말았다. 그 후로 기타는 영영 나와 인연이 없는 남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 라디오방송을 통해 들었던 감동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기타와 인연이 없기는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 군대에 간 아들이 휴식 시간에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해서 기타를 사서 보냈는데, 제대할 때는 아들만 돌아오고 기타는 어디에 내팽개쳤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 기타에 매력에 빠져서 벌어진 일이니 기타를 원망하진 않는다. 오히려 기타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이 앞선다. 어쩌다 익숙한 연주곡이 흘러나오면 그 장소가 어디가 됐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40년 전 학창시절처럼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모든 음악은 존중되어야 한다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 이번 회의 주인공은 음악 기획사 ‘콰가컬쳐레이블’의 대표이자 착한 밴드 ‘이든’의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정재영이다. 그는 2001년에 지금은 플라멩꼬 보컬로 활동 중인 ‘나엠(NA EM)’과 듀엣 ‘데자부’라는 팀을 결성하여 KBS ‘콘서트 7080’ 출연 등 수백 회의 라이브 공연을 펼쳐온 베테랑 연주자다. 플라멩꼬, 샹송, 라틴, 칸초네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등 다양한 세계 음악을 섭렵한 그에게 음악은 그저 존중의 대상일 뿐, 차별은 있을 수 없다.

듀엣 ‘데자부’ 시절의 정재영.

  “트로트라고 해서 수준이 낮고 샹송이라고 해서 수준이 높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음악에는 그 나름의 특징이 있고 또 그것을 향유해온 사람들의 문화와 정서가 녹아있습니다. 거기에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을 수 없죠. 음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악가라고 해서 높고, 대중가수라고 해서 낮은 건 아니죠. 모두가 자기의 음악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뮤지션일 뿐입니다.”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게 한 쿠바음악의 전설 꼼빠이 세군도

  기타리스트 정재영의 고향은 경남 김해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들은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에 매료되어 한동안 피아노 연주에 매달렸다. 대학에서는 전자통신을 전공했는데 통기타 연주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기타와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에는 야학 교사로 활동하면서 노래패의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음악인으로 살던 어느 날, 쿠바음악의 전설, 꼼빠이 세군도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나면서 월드뮤직을 기타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월드뮤직 붐의 최대 공로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인 최고령 꼼빠이 세군도는 음반 발매 당시 나이가 90세였다.

기타리스트 정재영.

  “꼼빠이 세군도의 노래와 연주를 들으면서 음악에는 나이가 없고, 열정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꼼빠이 세군도는 1950년대 후반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뒤, 사회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송이 주류를 이루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올드 뮤지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낮에는 이발사로,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지켜왔고 결국 음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그 진가를 세상에 드러낸 것이죠. 40여 년의 세월,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은 오직 하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예술가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

  코로나 19의 여파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공연 수입에 의존해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레저산업 종사자나 소상공인 등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온전히 공연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는 이번 코로나 19가 거의 치명적이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얼마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지난 5월 18일, 까치울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정재영 역시 벌써 몇 달째 수입이 전무한 상태다. 자연스럽게 그에게서 예술과 예술가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 그리고 예술가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왔다.

착한 밴드 이든의 공연 장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시선이 조금은 바뀌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연 활동이 중지된 상태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예술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을 겁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예술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감정을 정화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니 예술 없는 삶은 곧 기계와 같은 삶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술의 영향력이 이렇게 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예술가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지 안다면 우리 사회에서 한창 논의되고 있는 예술가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자식이 배가 고파 울고 있는데 예술을 계속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예술가 기본소득은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뮤지션 정재영의 꿈, 그리고 미래

  2004년 결혼과 함께 부산을 떠나 부천에 정착한 정재영은 기타 연주 외에도 작사, 작곡, 편곡, 음악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오랫동안 기타 강사를 하면서 2010년에 자바르떼에 입사하여 활동하던 중 시각장애인들에게 통기타 교육을 할 수 있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9년 동안 기타를 가르쳐왔다. 야학 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만나고 나서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더불어 시각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교재도 만들었다. 지난 2018년에는 몽골 출신의 뮤지션 ‘가나’와 함께 음악 여행 다큐멘터리 <옐로우 버스>에 출연하고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현재도 인천의 한 아마추어 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독립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착한 밴드 이든 멤버들과 함께.

  “2013년에 부천문화재단과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을 같이 하면서 ‘콰가컬쳐레이블’을 만들었어요. 규모가 작은 1인 기업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음악 기획사예요. 올해는 ‘콰가컬쳐레이블’을 기반으로 좀 더 많은 활동을 하려 합니다. 싱어송라이터 ‘웬지’, ‘이창학 & 조경옥’ 프로젝트 앨범을 프로듀싱 중이고, 부천에서 '거문고자리'로 활동 중인 '김은선' 씨의 앨범도 공동으로 프로듀싱하고 있습니다. 작사 작곡 활동도 열심히 할 겁니다. 그밖에도 부천문화재단의 2020년 ‘부천공연창작소’ 공모에도 음악극 작품이 선정되어 어느 해보다도 바쁜 날들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흠뻑 맞고 뛰면서도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에 그를 다시 만날 때는 멋진 노래 한 곡을 부탁해야겠다. 쿠바음악의 전설, 90세의 꼼빠이 세군도가 기타를 연주하며 67세의 여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도와 함께 부른 노래, ‘베인떼 아뇨스(Veinte Años)’가 문득 듣고 싶어진다.

음악 여행 다큐멘터리 <옐로우 버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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