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청개구리밥차가 찾아온다
“자, 아 해보세요. 이런. 위 어금니가 썩었네요.”
이기하 치과의사를 만난 곳은 도당동 강남공원이었다. 옆에선 청개구리밥차가 도당동 주민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여자아이가 간호보조로, 이기하 의사를 돕고 있다.
의료가방 두 개와 환자용 접이식 의자 하나, 휴대용 타구(환자가 물로 입안을 헹구고 뱉는 곳)가 전부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절실한 공간이다.
“아내가 보조역할을 하는데, 오늘은 아내가 수술이 잡혀서 동행하지 못했어요. 많이 바쁘겠는데요.”
꿉꿉한 날씨 탓에 이기하 의사는 비지땀을 흘렸다. 꼬마둥이 5명이서 우르르 몰려왔다. 치과진료를 받으려고 온 줄 알았더니, 보조역할을 하러 왔다고 한다. 여자이이 셋에 남자아이 둘이었다. 여자아이 중 하나가 “남자 간호사는 없어.”라며 선수 친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여자아이가 “남자 간호사도 있어.”라고 말하지만 남자아이들은 기분이 상했다. 이제 보조역할 경쟁률은 3:1이다.
이기하 의사가 “제일 먼저 누가 할래?”라고 물었다. 머리 굵은 여자아이가 손을 든다.

 
 
“이게 석션(흡입기)이라고 하는데 내가 윙하고 할아버지 이를 긁어내면 석션을 잘 가져다 대면 돼. 내 할아버지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돼.”
청개구리밥차에서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진료소로 모였다. 남의 입속만큼 재밌는 것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기하 의사의 친절한 설명도 한 몫 한다.

“위 어금니가 썩었어요. 뽑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게 제일 좋잖아요. 여기에 레진(합성수지)으로 치아를 만들 거예요.”
이기하 의사에게 치료받으려고 할아버지는, 다른 병원에서 신경치료를 하고 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주치의인 셈이다.

“어금니는 활용을 많이 하잖아요. 그냥 레진(합성수지)만 해서는 무너지기 쉽죠. 여기에 교정 철사를 묶어 지탱하게 만들 거예요.”
약 30분 남짓, 진료를 마친 할아버지는 일어서자마자 이기하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할아버지는 “치과에서도 진료 받는 게 힘든데, 여기서는 더 힘드네요. 제가 이렇게 힘든데 이 의사양반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다른데서는 이를 뽑으라고 해서 안가고 버티다가 여기에 왔어요. 무사히 치료를 받고 가니, 후련합니다.”고 하셨다.
다음 손님은 40대 아저씨였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금니에 충치가 심했고 앞니 한쪽이 깨져 있었다.
“어금니는 신경치료를 받고 할 수 있어서 치료가 불가능해요. 앞니만 레진을 할게요.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미관상 보기 좋게 치료하겠습니다.”

 
▲ 이기하 치과의사
치아를 예쁘게 만드는 재주는 없다던 말과는 달리, 감쪽같이 치아가 완성됐다. 아저씨는 가지런한 앞니를 거울로 확인하고서야 활짝 웃으셨다.
겁을 먹고 우는 아이, 이가 나오지 않아 진료 받은 9개월 아기 등. 나이 불문하고 사람들은 치과 진료소를 찾았다.

이기하 의사가 기지개를 켰다. 두 시간의 진료가 끝났다.
그는 “이 가방이 이렇게 보여도 400여 가지의 도구들이 들어있어요. 봉사활동에 늘 동행하는 가0방입니다. 미얀마와 베트남으로 해외봉사를 갈 때도 마찬가지고요.”라며 진료가방을 챙겼다.
이기하 의사는 서울에서 10년, 시흥에서 10년 치과 일을 했다. 시흥에서 일할 때도 봉사활동을 했었고 이런 활동이 즐거웠다고 한다.

 이기하 치과의사의 단짝친구.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온다.
“그러다가 3년 전, 목 디스크 수술을 받고 일을 하기 버거워지면서 온전히 봉사활동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청개구리밥차를 만든 사람이 제 지인이에요. 그렇게 알음알음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 달동네와 경기도 소외지역을 주로 돌아다니며, 해외로도 자주 나간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제 도움 절실히 필요한 곳이 있을 텐데, 제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전국으로 활동하고 싶지만 그 지역과 연계하기 어려운 탓에 아는 곳들만 다니고 있어요.”
해외봉사에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의사 경력 20년 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 걱정 말라며 빙그레 웃는다.

“언제까지 해야겠다고 정해놓지 않았어요. 하는데 까지 하고 싶어요.”
힘이 부치면 쉬어가고 돈이 떨어지면 일을 해 돈을 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이기하 의사. 그 마음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