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동갑내기 68년생 활동가여서 친하게 지내고 있던 그녀가 간호사였다는 걸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시민단체 대표,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경기본부장, 정의당 당원으로만 알았지 그녀가 간호사로서 보건의료노조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정작 몰랐었다.

사범대를 떨어지고 선택한 간호대 그리고 사촌언니가 살았던 부천. 그녀의 20대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무 살 최은민이 처음 만난 부천은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는데 이제 그 부천은 좋은 사람들로 인해 정겨운 곳이 되어 지역운동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노조위원장 그리고 뜨거웠던 기억

간호사가 되어 취직한 신천연합병원, 그 곳에서 그녀는 스물일곱에 노조위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직종이 모이는 병원인데다 쟁쟁한 선배들도 많았을 터,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똑 부러지는 그녀에게 노조원들이 무한한 신뢰를 보냈을 거라 그려진다.

시흥시에 있는 신천연합병원은 참의료를 실현하는 지역사회 병원이라는 좋은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좋은 취지로 출발한 그 곳도 비정규직 직원의 처우를 둘러싸고 최초의 파업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당시 병원에서는 ‘정규직의 급여를 조금 더 올려줄테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규직 조합원들은 “우리가 임금을 동결할테니 비정규직 동료를 정규직으로 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파업전야제 당시, 나와 같은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월급을 받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발언한 조합원, 신혼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파업 찬반투표가 먼저라며 달려와 기꺼이 결의를 다져주었던 조합원이 있었다. 그렇게 뜨거운 단결로 진행된 파업투쟁은 결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그 조합원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은 두고두고 그녀에게 큰 울림을 주었을 거고 삶의 큰 동력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리라.

이후 민주노총 총연맹 부위원장 시절 포항지역 건설노동조합 파업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함께 했다. 당시 집회에 참여했던 하중근 노동자가 전투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포항에서 서울로 상경투쟁 하러 올라왔다. 그 집회에서 자신이 구속될지 모른다는 예감을 했다. 그러나 함께 한다는 것!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결국 그 자리에 끝까지 함께 하며 결국 구속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딸에게 엄마의 갑작스런 구속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한참 엄마의 손길을 받아야 했던 딸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오래토록 가슴 한 구석에 담고 살았다. 얼마 전 구속 당시 갑작스런 엄마의 부재에 대한 사과의 말을 딸에게 전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은 엄마의 미안함을 이해해주었다.

어느덧 오십을 훌쩍 넘은 그녀는 지금까지 사회운동을 쉰 적이 있었을까? 운동에 대한 고민을 놓은 적이 있었을까? 지난해까지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경기본부장을 15년간 맡았었고, 지금은 노동과 지역의 만남을 꿈꾸며 시민단체 파란의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또한 정의당의 당원으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건강한 시민들과 함께 노동의 소중함을 배우고, 시민들의 참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해 ‘파란’을 통해 같이 고민하고 방향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녀랑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부천은 어느 도시보다 시민사회의 역량도 뛰어나고 건강한 일꾼들도 많아 외롭지 않다고 말이다. 파란이 그리고 최은민 대표가 그 길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더 익어갈 거라고 말이다. 물론 나 역시 졸졸 따라가며 같이 할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녀는 요즘 사진에 푹 빠져 있다. 부천 YMCA 사진 동아리 ‘선용’ 회원이다. 회원들과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렌즈를 통해 사물을 찍다 보면 선택과 집중을 고민하게 되고, 내려놓는 것 ‘빼기’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주위의 사물과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거 같다. 가끔씩 나에게 카톡으로 자신이 찍은 멋진 사진들을 보내주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다시 서재에 처박혀 있는 사진기를 꺼내 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좀 더 좋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꼭 건강하자고 했다. 그래야 좋은 힘이 나온다고 말이다. 그렇게 살면서 68년생 동갑내기인 우리 둘은 늙지 말고 익어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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