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생 주부 A씨,
“코로나 덕분에 살아난 내 시간”

시댁은 부천 상동, 친정은 시흥인 73년생 주부 A씨. 올해 코로나 때문에 추석 명절에 찾아오지 말라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덕분에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친정아버지가 세종병원에 정기검진 받으러 자주 오시는데, 부천에 확진자 생겼다고 문자 받으시고 그러니까 불안하셨나 봐요. 추석 때 부천사람은 절대 시흥에 넘어오지 말라고, 아예 발도 들이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추석 명절 끝나고 바로 제 생일이었거든요. 보고 싶으셨는지 케익 사놨으니까 와서 먹고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냉큼 달려가서 얼굴 뵙고 왔죠. 근데 아빠, 엄마가 내 나이를 모르셨는지, 큰 초 네 개만 꽂으셨더라고요. 하하하!!”

A씨는 코로나가 들이닥치지 않았더라면, 보통의 명절처럼 갈비, 겉절이, 식혜, 물김치, 나물까지 차례 음식 바리바리 준비해서 시댁에 갔을 텐데 올해는 허리 펴고 지냈다며 웃는다.

“코로나 때문에 김치가 금치가 됐잖아요. 이번에 김치도 안 하고, 힘든 식혜도 안 했으니까 좋지. 명절 음식하고 나면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그랬거든. 코로나가 살렸지, 뭐! 그런데 우리 형님도 상동 사시고, 시부모님도 상동 사셔서 콩나물신문 보실 텐데... 내가 한 얘긴지 모르시겠지?”

81년생 주부 B씨
“코로나 덕에 비행기 타는 사치를”

결혼 14년차 주부 B씨는 고향이 부산이다. 1년에 두 번 명절마다 부산까지 다녀오는 게 큰일 중에 큰일이다.

“차 운전해서 내려가면 편한데, 아직 애도 어리고 힘들어 할까 봐 KTX 기차표 예매해서 부산에 다녀왔거든요. 근데 기차표 예매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뉴스에서 보통 한 달 전쯤 명절 기차표 예매할 수 있는 기간을 알려줘요.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있는 게 딱 하루거든요. 예매하려고 ‘접속하기’ 버튼을 누르면 몇만 명이 대기인원으로 떠요. 요즘은 대기시간이 좀 빨리 줄어드는데, 예전엔 30분씩 기다리다가 튕기기도 하고 그랬어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연휴를 피해서 일찍 다녀왔어요. 그런데 비행기 값이 기차표보다 싼 거예요. 그래서 1인당 편도 13,900원으로 부산에 다녀왔어요. 코로나 덕분에 사치를 부린 거죠.”

B씨는 명절이 매년 열흘쯤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도 덜 막힐 거고, 예매할 수 있는 표도 넉넉해질 테니...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올해는 친정 먼저 가세요, 휴가를 더 드립니다!’ 이런 공약을 내거는 정치인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무조건 찍을 거예요. 시댁을 항상 먼저 갔었는데, 휴가도 길어지고 친정도 여유 있게 다녀오고 싶어요.”

94년생 청년 C씨
“쓸모없던 그 녀석이 그립네요”

시집 간 언니와 군대 간 막내 동생 덕분에 집에서 해야 할 역할이 세 배는 많아진 청년 C씨.

“2년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매년 차례를 지냈어요. 엄마 도와서 저랑 남동생이랑 음식도 만들고 그랬죠. 그런데 작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면서 엄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 것 같았어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음식을 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 먹을 건 해야하니까 전도 부치고 튀김도 했어요.”

C씨의 아버지는 집안에 둘째 아들인데 큰아들이 해야 할 몫까지 다 짊어져야 하는 삶을 살았다. 덩달아 그의 아내도 맏며느리처럼 살아왔던 거다.

“큰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어요. 그래서 아빠가 둘째인데도 제사 지내고 집안일을 맡아서 하셨죠. 엄마가 그동안 말씀은 안 하셨는데, 그게 세월이 쌓이면서 한이 됐나 봐요. 외할머니가 그러셨대요. ‘큰아들한테는 시집 안 보낼 거다’라고요. 근데 큰 며느리 노릇을 하는 딸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셨대요.”

명절날 차례가 없는 집, 하지만 기름 냄새는 여전하다. C씨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지만 가까운 사촌까지 모여서 인사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원래 그렇게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가족이라고.

“제가 올해 제일 아쉬웠던 건 군대 가 있는 동생이었어요. 둘이서 전 부칠 때 저는 프라이팬만 집중하면 됐었거든요. 그런데 혼자 전을 뒤집고 부쳐야 하잖아요. 특히 모양 잡아야 하는 전을 부칠 땐 동생 손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매일 농담했었는데...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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