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한 기억

작은 다이어리나 모바일 캘린더가 아닌 커다란 탁상 달력을 가지고 다니며 일정을 적는 친구를 보았다. 빽빽하게 적혀있던 일정들은 워크숍, 회의, 집회 등 배우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들이었고, 지킬 수 있는 약속들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던 달력이 주는 무게는 가벼울 수 없었다. 외출 후 돌아가면 책상에 꺼내 눈앞에 둔다는 말을 들으며 ‘뭐가 그리 철저하지?’ 하고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었다.

옷가게에서 산 옷보다는 단체 티셔츠가 참 잘 어울리는 친구다. 차별, 소수자, 인권, 등 다부지게 적혀있는 티셔츠들의 문구들은 그녀 모습 자체다. 청바지에 단체 티셔츠 한 장, 발이 편할 것 같은 운동화, 그리고 단정한 머리, 자기 몸보다 더 큰 피켓, 스테인리스 텀블러, 달력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백팩을 메고 꼿꼿하게 자기 역할을 찾아다니면서도 표정은 항상 생글생글한 그녀가 자녀와 함께 있을 땐 달콤한 생크림이 넘어가듯 부드럽고, 여고생 같은 발랄함과 상냥함이 넘쳐흘렀다.

단체티셔츠 중에서도 보라색 옷이 제일 잘 어울리는 그녀. 모든 것이 진심이고 너무 간절해서 많은 부당한 것들에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녀는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겉모습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듣기 위해 콩나물신문 인터뷰를 핑계로 다시 만났다.

매일 아침 김밥을 싸요.

그녀의 일과는 5시 30분에 일어나서 바로 이불을 개고 김밥을 준비한다. “수년 동안 남편의 아침은 김밥이에요. 내가 한 김밥이 맛있나 봐요. 몇 년을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대요. 근데 내가 먹어도 내 김밥이 젤 맛있어요.” 세상이 조용한 새벽, 혼자 일어나서 김밥용 밥을 하고 어묵, 맛살, 햄을 준비하고, 당근을 채 썰어 볶고, 계란도 채를 썰어서 준비하고 모락모락 고슬고슬 밥을 퍼서 한 김 식히고 양념을 한 밥으로 김밥을 먹기 좋은 크기로 싸고 있는 은숙 씨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그 일과를 몇 년 동안 하고 있다는 그녀는 남편 일어나고 챙기고 출근시키고, 7시 큰아이 챙기고, 큰아이가 주문한 아침 메뉴를 새로 만들어서 먹이고, 8시에 둘째 아이 기상하면 또다시 둘째 아이가 주문하는 메뉴로 아침을 주고 나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단다. 알람 없이 항상 5시 30분이면 일어나고 단 한 번도 늦게 일어나서 늦어본 적이 없는 그녀의 아침은 벌써 3시간이 넘게 흘렀고,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권은숙, 9시에 선생님으로 변신!

초등 저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녀는 9시부터 선생님이 된다. 두 아이가 다른 환경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초등학생이 있는 거실과 중학생이 있는 방을 들락거리며 가르쳐 주고, 숙제를 봐주다가 3교시쯤 되면 급식 선생님으로 변신한단다. 한 시간 동안 점심을 준비해서 아이들이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따뜻한 점심을 먹이고 다시 5, 6교시를 아이들 옆에서 학습을 도와주는 은숙 씨는 아직 소파에 앉아 있지 않고 있다. 엄마 은숙씨는 방과 후에도 첫째 일정과 둘째 일정에 맞춰 있다.

자기보다 더 큰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익숙하던 은숙씨의 집 콕 생활은 ‘많은 엄마도 견디고 있는 생활인 거 아니야?’라고 터부시할 수 없다. 자녀들에게 흔들림 없는 안전기지가 되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지치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노력과 격려가 함께 하고 있었다. “아이들 교과서 속에서 반인권적인 내용을 보면서 분노도 해요. 온라인 수업이라 교과서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에요. 학교에 책이 있었으면 보지 못했잖아요.”라는 말에 “집에도 내가 아는 은숙씨는 여전히 있구먼.” 하며 코로나 시기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이 드러난 사이에도 교과서 속 인권을 찾고 있는 그녀의 일상은 웃을 수밖에 없다.

자체 발광(發狂) 은숙씨.

누가 뭐라 해도 은숙씨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부천FC 축구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경기장에서 관전하며 현장의 소리와 분위가 속에서 스포츠에 입문한 은숙 씨는 부천FC의 누나? 지금은 이모.

갓난쟁이 들쳐 업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원정 경기 응원을 다녔다는 은숙씨. “운동하는 ‘우리 애들’ 간식 싸 들고 훈련장 가죠.” 라는데 말속에 우리 애들은 선수를 칭하는 말이다. 축구 팬을 넘어 낯선 부천에서 뛰고 있는 어린 선수들의 건강까지 챙기던 모습은 완전한 가족이었다. “축구장 음악 소리만 들으면 몸 안의 피가 끓어오르고, 마치 전사가 된 듯 가슴이 뛰어요….”라고 말하는 은숙씨.

원정 경기 가기 위해 기차표 예매하고, 경기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기분은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축구 보러 갔었다는 은숙씨는 40대의 나이에 발광할 수 없어 자제하려 엄청나게 노력한단다. 부천FC에 있다가 다른 곳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까지 응원한다는 은숙씨와 그런 은숙 이모를 잊지 않는 선수들을 얘기할 때는 엄마 미소가 가득했고, 코로나로 경기를 보지 못해 멀어질 만 한데도 불구하고 축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밝은 에너지를 내며 열변을 토하던 그녀는 자체 발광(發狂)이 확실한 듯.

정치하는 엄마, 힘 받으며 웃게 해줘요.

정당의 당원으로 5년간 열심히 활동했지만, 당에서도 양육자의 현안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해결할 고민이 없어 보여 속상해할 때,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라는 책 모임을 통해 정치하는 엄마(이하 정치하마)들의 회원이 되고 활동가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 학교 학부모회 활동하는 동안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던 은숙씨에게 정치하마 언니들은 "비빌 수 있는 큰 언덕’이었고 그곳에서는 모가 나 있거나 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양육자들이 이렇게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외롭지 않았고,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 하마 언니들과 함께하는 시간 덕분에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다.”고 은숙씨는 말한다.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아픔에 슬퍼했고 바뀌지 않는 구조에 분노할 줄 알고, 변혁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며,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응원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을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바라본 것들이 마음을 움직였나?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스며들어 그녀는 실천할 것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스스로 담금질을 하는 삶에 책임을 지고 있는 40대다. 일어나는 시간조차도 알람에 의지하지 않고, 탁상 다이어리에 책임을 하나하나 적어가는 그녀는, 일어나는 새벽부터 잠드는 새벽까지 하루 24시간 이상 최선을 다하며 그녀가 가진 모든 역할에 충실하고 아는 대로 행동할 줄 아는 ‘진짜 실천하는 활동가’이다.

은숙씨에게 콩나물 신문은?

콩나물 신문 덕분에 이웃을 많이 알아가고 부천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에요. 콩나물 신문은 제게 부천을 알려주는 ‘백과사전’이에요. 그리고 이웃의 소식을 전해주는 편지에요. 다음 호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항상 기다려져요. 애정으로 함께합니다. 콩나물신문♡지”라며 올 초부터 직접 배포도 하고 있어 더 애정을 표현하는 은숙씨의 삶도 응원합니다.

안미현 조합원(좌)과 권은숙 조합원(우)
안미현 조합원(좌)과 권은숙 조합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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