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천 이야기 <1>

원미산(遠美山,해발 123.8m)을 오른다.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시작해 진달래동산을 거쳐 야트막한 능선을 오른 뒤 망골과 뒤골로 갈라지는 사거리 산길을 만난다. 네거리쉼터라고 명명해 놓고 둘레길을 두는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를 놓아두었다. 망골에는 부천청소년수련관이 들어서 있고, 뒤골에는 부천시립도서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원미산 골짜기 마다 이렇듯 건물들이 들어서 옛모습을 찾기 힘들다.

나무계단이 죽 이어지고 나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다다른다. 많은 이들이 운동에 열심이다. 특히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젊은이들은 산을 잘 오르지 않고 어르신들이 가볍게 산책하듯 애용하는 원미산이다.

▲ 원미정

원미산 정상에는 원미정(遠美亭)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층으로 최근에 지어진 날렵한 모습이다. 이층 누각에 올라서면 부천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 성주산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소래산이 뾰족하게 다가온다. 부천시를 가로질러 바라보면 천마산, 계양산이 손에 닿을 듯이 다가온다. 이곳으로 해가 지기 때문에 저녁이면 일몰이 장관이다. 그러기에 저녁때가 되면 일몰을 감상하러 많은 이들이 원미정을 찾는다. 그 오른쪽으로는 김포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바라볼 수 있고, 그곳을 조금 지나면 개화산이 자그마한 몸집으로 서 있다. 개화산을 지나면 바로 한강이다. 부천 중동을 가로지른 굴포천의 하구로 연결되어 있다.

뒤로 돌아서서 바라보면 서울 목동에 있는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 맨 먼저 반갑게 맞이해준다. 멀리는 북한산이 아슴하게 그 위용을 드러내준다. 오른쪽으로는 관악산, 청계산이 아득하게 밀려온다. 거기에다 한강 물줄기가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이곳 사이로 아침에는 해가 뜬다. 매년 새해에는 이 해뜨는 장관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원미산 해돋이’ 행사가 벌어진다. 저녁이면 달이 뜨는데 정월 대보름날 떠오르는 만월(滿月)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이 원미산(遠美山)은 그 이름에 유래가 있다. 한자로 ‘멀 원(遠), 아름다울 (美), 뫼 산(山)’을 쓴다. 조선시대 때는 현재와는 달리 중동 벌판이 바닷물이 드나드는 갈대밭 천지인 구릉지였다. 원미산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밀물 때면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그래서 중동벌판에는 목시통이라는 저수지만큼 큰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 물구덩이에는 사방에서 흘러들어오는 산골 물이 모여 큰 웅덩이를 이루었다. 이 중동벌판을 둘러싸고 계양산, 천마산, 거마산, 성주산, 원미산, 도당산, 개화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분지였다.

그래서 계양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부평도호부 관아에서 원미산이 정통으로 바라보였다. 부평도호부 부사가 어느 날 아침 깨어나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니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세가 그지없이 선연(鮮然)했다. 또한 저녁노을에 반사된 그 푸르름은 단아하기가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부사가 저 산 이름이 뭐냐고 아랫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이에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자 부사가 그 즉시 산이름을 원미산(遠美山)이라고 했다.

이 같은 설화를 존중하는 것인지 몰라도 원미산(遠美山)이 그대로 굳어져 사용하고 있다. 부천시민들은 모두 원미산(遠美山)으로 알고 쓰고 있다. 원미산 둘레길을 돌 때도 이같은 설명을 그대로 믿고 따르고 있다.

▲ 원미산에서 바라본 일출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필사본으로 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부평군 옥산면 조종리에 속하는 원미산(遠眉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 ‘미’ 자가 ‘눈썹 미(眉)’로 되어 있다. 부평도호부 청사에서 바라보면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멀리서 바라보면 눈썹 형태를 하고 있는 산'이 된다. 산이름을 형태상으로 짓는다면 원미산(遠眉山)이 더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원미산(遠美山)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어 원미산(遠眉山)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지금부터 원미산(遠眉山)이라고 쓰자’라고 제안한다고 해서 널리 쓰여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지 원미산에 대한 유래를 이해할 때 필요할 뿐이다.

더구나 원미산이 순우리말로는 ‘멀미’라고 한다. 멀미는 어쩌면 한자로 기록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원미산 아래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 사이에 불려졌던 실제 이름이기에 소중하다. 멀미라고 불려진 역사적 기원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꿋꿋하게 원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실제 이름이다. 그러기에 원미산 보다 멀미라는 이름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멀미를 쓰지 않고 원미산만 쓰면 멀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단지 기록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골동품 이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멀미’라는 이름을 되살리는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마음이다.

원미산 중턱을 잘라내 소사역에서 원종동으로 가는 넓은 길을 내고선 ‘멀뫼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도 왜곡이다. 멀미길이 원형이기 때문이다. ‘미’를 굳이 발음하기 어려운 ‘뫼’로 쓴 것이다.

멀미에서 ‘멀’은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하는 말과 똑 같다. 사람의 머리가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듯이 산이름도 유사하다. 이 머리는 ㅁㆍㄹㆍ에서 나온 말이다. ‘꼭대기·마루’를 뜻한다. 동시에 ‘크다·신성하다·존엄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미’는 산의 고유어이다. 예부터 산을 가리킬 때 ‘미·메·뫼’ 등이 쓰였다.

그러므로 멀미는 ‘아주 신성한 큰 산’이라는 뜻이다. 멀미 아래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자나깨나 우러르며 바라보았던 의미 깊은 산이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멀미 아래 마을인 조마루, 여월, 벌응절리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조금 떨어진 도당, 시우물, 멧마루, 고리울, 장말, 사래이, 깊은구지, 소새 등 다른 지역 사람들도 멀미라고 불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원미산으로 불리는 산은 세 개의 산을 아우르고 있다. 부천의 주산인 원미산이 그 첫째이다. 부천시립도서관 아래 시민소체육공원과 원미동 두산아파트 사이에 나지막한 산이 하나 있다. 현재도 이 사이에 조그만 소로길이 있다. 이 산 아파트에 깎이고 단독주택, 연립 주택 등이 산을 갉아먹어 산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힘들다. 이 산 이름이 보릉산(甫菱山)이다. 보릉산이 두 번째 산이다. 이 보릉산이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부평군 옥산면 조종리 편에 당당하게 올라와 있다. 이제 부터라도 이 보릉산을 실제 지도 속에 편입시켜 산의 짜투리만 남아 있더라도 애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 번째 산은 부평군 하오정면 여월리에 있는 장좌봉산(將峰山)이다. 이 장좌봉산은 원미산의 한 봉우리로 잘못 알고 있다. 원미산에는 ‘제1봉우리로 장대봉이 우뚝 솟아 있고, 제2봉우리 멀미봉이 소사동 방면에 솟아 있다. 제3봉우리로 장자봉이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장자봉이 장좌봉산(將座峰山)의 최고 봉우리이다. 원미산이 아닌 장좌봉산으로 조선지지자료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장좌봉산하고 원미산이 붙어 있어 그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다. 지금은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까치울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뚫려 있어 장좌봉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러기에 장좌봉은 찾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조각조각 해체 되어진 장좌봉산(將座峰山) 산자락만 남아 있다.

이같은 사실에 기초해서 원미산의 골짜기들도 재편성 되어야 한다. 는 원미산 골짜기로는 절골, 뒤골, 고비골, 망골, 둔대골, 새재골, 뱀골, 미골, 멱골, 박박골이 있다. 장좌봉산 골짜기로는·장좌골, 봉황골, 방골이 있다. 보릉산(甫菱山)의 골짜기는 산이 워낙 작아 아주 작은 골짜기들이 있었지만 그 이름이 없다.

원미산의 골짜기들은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물을 품어 내고, 가을이면 멋스런 단풍을 뽐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 전체 중에서 상당 부분 주택지로 깎여나가 물을 풍부하게 저장해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골짜기엔 아예 물이 말라 계곡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고 있다. 단지 망골의 칠일약수터, 둔대골의 산수약수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약수터는 수질이 불합격 처리를 받아 약수통을 가져와서 담아갈 수 없는 약수가 되었다.

이 원미산은 벌응절리에서 바라보면 ‘모양이 둥그렇게 보이는데 둥근 산’이라는 뜻의 둔대산으로 불리고 있고, 춘덕산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우리말의 벼락, 베락, 베리, 벼루, 별, 베루 등에서 나온 말인 ‘낭떠러지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벼락산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원미산이 멀미, 둔대산, 춘덕산, 벼락산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미산을 제외하곤 다른 이름들은 그저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이름들도 부천 원주민들이 역사 속에서 살아온 생생한 모습인데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중동인 장말 지역에서 원미산을 바라보면 세 봉우리가 나란히 눈에 들어온다. 이 봉우리들에게 각각 떡봉, 밥봉, 죽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장좌봉이 떡봉이고, 장대봉이 밥봉, 멀미봉이 죽봉이다.

옛날에는 이 봉우리들에 달이 뜨는 위치를 보아서 그 해의 농사를 점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정월에 원미산 산봉우리들을 보아서 떡봉에서 달이 뜨면 풍년이 들고, 밥봉에서 달이 뜨면 그저 밥 먹기는 괜찮다고 하였다. 그리고 죽봉에서 달이 뜨면 흉년이 들어 죽밖에 못 먹는다고 하였다. 이는 떡이나 죽 대신 밥인 벼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천 옛 원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글ㆍ사진 Ⅰ한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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