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천 이야기 ⑤

 

▲ 고강선사유적공원이 들어서기 전 찬우물

고리울의 어원은 ‘곰달’에서 출발한다

 부천 고강동을 보통 고리울로 부른다. 고강동은 고강본동, 고강1동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 고리울은 고리울로, 고리울가로공원, 고리울초등학교, 고리울꿈터작은도서관,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고리울경로당, 고리울교회 등으로 쓰여지고 있다. 고강동의 옛이름으로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리울이 어떻게 해서 생긴 이름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는 듯 하다. 그저 고강동의 옛이름이기에 여기저기 상호명으로 즐겨 쓰는 정도이다. 예전에는 고강동이라는 땅이름은 없었고, 고리울만 있었기에 토박이 분들은 고리울에 더 익숙해져 있다.

 어원을 풀이하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봉배산이 장안사산으로 네이버 지도 등에는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울 신월동 쪽에 있는 장안사라는 절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인데, 이는 터무니없는 작명이다. 지도 등에 표기할 때 부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서울의 입김이 작용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봉배산으로 명칭 변경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봉배산의 그 신성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고리울의 어원을 더듬어 가다보면 봉배산 청동기마을까지 닿는다. 봉배산에 청동기마을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가 신성한 지역이 되었다. 봉배산 청동기마을을 이끌어가는 족장이자 제사장인 ‘감, 곰, 검’이라 지칭되는 분들이 살고 있던 곳이기에 신성하다는 의미가 붙은 것이다. 그래서 이 봉배산을 애초에는 ‘곰달’이라고 했다. ‘족장이 살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를 한자로 쓰면서 고음달(古音達)이 되었다. 부천과 이웃인 김포시 양촌면 학운리에도 고음달(古音達)이 있다. 이곳에선 고음달이라고 하거나 곰딸이라고 한다. 달이 딸로 변해 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이 고음달에서 고음(古音)은 곰을 늘여 쓴 것으로 ‘감, 곰, 검’이라는 족장이라는 뜻이고, 뒤에 오는 ‘달(達)’은 고구려에서 산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여기에 사람 사는 동네를 뜻하는 ‘마을 리(里)’를 붙여 고음달리(古音達里)가 되었다.

 밀양변씨 대동보에는 세종 15년인 1433년 이조참판에 추증된 변예생이 서울에서 30여 리 떨어진 흑량리(黑梁里)에 정착했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흑량리(黑梁里)에서 ‘검을 흑(黑)’은 ‘검, 곰’을 가리키고, ‘다리 량(梁)’은 ‘달’을 가리키는데 신라에서 산을 가리킬 때 주로 쓰였다. 백제에선 산을 가리킬 때 ‘진(珍), 등(等)’을 썼다. 다리 량(梁)은 물 위에 세워 건너지른 목재를 가리키는데, 집을 지을 때 쓰는 들보도 다리하고 모양이 같아 함께 쓴다. 그러니까 흑량리, 곰달리, 고음달리는 똑 같은 말이다.

고리울의 위치

 고리울의 위치는 당연하게 봉배산 바로 아래에 있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된 마을이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어진 것이다. 청동기 마을은 봉배산 꼭대기 근처인데 고리울은 그 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보통 고리울의 위치를 밀양변씨의 세거인 강상골로 이해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고리울과 강상골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기에 1989년 당시 성지동에 속했던 것이 원종동과 고강동으로 분동되면서 이름을 새롭게 얻은 것이다. 고리울의 한자어인 고리동에서 ‘고’와 강상골의 옛이름인 강장골에서 ‘강’을 따서 고강동이라고 한 것이다.

 고리울 마을 집들을 부수고 고강선사유적지로 들어가 버린 찬우물이 있는 지역을 비롯해서 고리울로 8번길 중심으로 있는 빌라들, 원종로와 역곡로가 맞닿는 지역, 경인고속도로 너머 산호빌라 지역까지 포함해서 고리울이다.

 이 고리울을 다른 이름으로는 장갯말이 있다. 장개의 어원은 잔개로 ‘잔’은 ‘작다’, ‘개’는 포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장갯말은 작은 포구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에 장끼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장갯말 아래로 고리울내가 흘렀는데, 이곳으로 서해 조수가 밀려들어 밀물 때는 내를 건너는 작은 배가 묶여 있는 그런 포구가 있던 마을이었다. 바다 밀물을 막아서 농사를 짓기 위해 원종리보, 고리동보 등의 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장갯말까지 서해 조수가 올라왔고, 이 조수를 따라 배를 띄워 멧마루나 대장, 약대로 오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장갯말은 고리울 마을이 커져서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어쨌거나 고리울과 장갯말이 똑같은 마을이었음은 틀림없다.

 

고리울 공동우물인 찬우물

 고강선사유적공원에는 찬우물이 있다. 고리울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다. 사각형의 우물틀이 새로 만들어져 있고, 그 위를 구멍 있는 철판으로 막아 놓았다. 아래는 노깡이라는 일본말로 불리는 토관이 그대로 묻혀져 있다. 우물 속은 그야말로 쓰레기들이 들락거리는 천국으로 변해 있다. 이걸 찬우물이라고 해야 하는지...찬우물을 보존해 놓았다는 것이 이 모양이다.

▲ 고강선사유적공원에 덩그랗게 놓여 있는 찬우물

 선사유적공원이 만들어지기 전 마을 건물들이 그나마 남아 있을 때는 우물 주변으로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고 우물물이 흘러가는 도랑도 있었다. 도랑 옆에는 찬우물이라고 새겨놓은 글자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공원을 만들면서 모두 제거되고 덩그러니 평지와 별 차이없이 우물만 표시해 놓았다.

 찬우물은 물맛이 좋고 아주 차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사유적지 청동기인들이 이용한 우물이기도 하고, 고리울, 장갯말 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마을 대동우물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봉배산 줄기하고 아주 가까워 가을에 뱀이 많이 나와 떡을 갖다 놓고 빌기도 했다. 물의 양이 많아 마을 사람들이 찬우물 가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으나 경인고속국도가 뚫리면서 수량이 감소했다. 경인고속도로로 잘린 산호빌라가 있는 곳에도 마을 우물이 있어 지금도 찬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다.

 

▲ 2000년도에 찍은 곰달래고개에 있던 당고사터 (1)

 

▲ 2000년도에 찍은 곰달래고개에 있던 당고사터 (2)

곰달래고개의 의미

 고리울 동쪽에 있는 곰달래고개는 한자로 ‘고음월령(古音月嶺)’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에서 한양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한 고개였다. 서울 고리울과 서울 신월동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던 고개였다. 지금은 이 고갯길로 경인고속도로가 통과되어 고갯마루는 사라지고 없다. 더불어 곰달래고개에 있던 서낭당도 사라졌다. 이곳은 당고사터라고 해서 오래된 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곰달래대동회에서 만든 당고사를 지내던 제단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멧마루, 약대를 거쳐 부평을 지나고 제물포까지 연결된 수도관이 있었다. 수도길이 있었다.

 원래는 고음달령(古音達嶺)이어야 하는데, 고음월령(古音月嶺)으로 되어 있다. 고음은 앞에 설명한 내용 그대로이고, 월(月)이 하늘에 있는 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월(月)과 달(達)이 산을 가리키는 같은 말이다.

 이 곰달래고개는 명백하게 부평군 하오정면 고리동으로 표기되어 고리울에 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 신월동으로 속하는 걸로 되어 있어 서울 신월동, 화곡동에서 도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곰달래로이다. 고음달을 고운달로 해석해서 고운달동네라는 동네도 있다. 이 동네는 달빛이 맑게 비치는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족장이 산 마을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엉뚱하게 달빛이 곱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곰달래고개를 부천에서 되찾아 와야 한다. 고리울에서 곰달래서낭당에서 당제도 지내고 했다. 그런데 이 이름 사용을 서울 양천구에 빼앗기고 말았다. 아쉽고 아쉽다.

고음달리, 곰달리라는 땅이름도 즐겨 써야

 고리울 뿐만 아니라 애초의 이름인 곰달리, 고음달리(古音達里), 흑량리(黑梁里)라는 이름도 되찾아서 써야 한다. 고음달리(古音達里)에서 가운데 음달(音達)을 의도적으로 빼버리고 고리울만 써서는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고리울은 옛마을이라는 뜻밖에 없다. 그렇지만 곰달리라고 하면 족장이 산 마을, 족장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확대된다. 봉배산 청동기 마을에서 살던 족장이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는 중요한 사실이 내재되어 있다.

 고리울, 고강동에 사는 분들이나 부천에 사는 분들은 이제부터라도 곰달리, 고음달리, 흑량리를 즐겨 썼으면 한다. 자주 불러보고 머리속에서 떠올려야 그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음달리유치원, 곰달리공부방, 고음달리찜질방, 곰달리주유소, 흑량리복지회관 등으로 새로 만들어 즐겨 썼으면 한다.

▲ 고강선사유적공원이 들어서기 전 고리울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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