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배산에 오르다!

 

 

지난 봄 4월 23일 봉배산을 만났을 때는 온통 진분홍의 철쭉꽃으로 만발해 있었는데 이번 9월 24일의 봉배산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봉배산은 장갯말산, 명산, 장기말산, 장개말이라고 부르는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 위치한 작은 산이다. 우선 청동기시대 유적지이기도 하고, 장갯말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는 대동우물이기도 했다는 찬우물에 대한 설명이 있으셨다. 비록 물은 메말라 있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생명수를 머금은 우물터를 보니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금은 의미를 느꼈다고 할까?

봉배산은 선사시대 유적지로 청동기시대 유물인 1995년 주민들이 여름홍수로 흙속에 묻혀 있던 유적들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7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단움집을 비롯해 제사시설인 적석환구유구가 발굴되었다.

그런데 1967년 경인고속도로 공사 중 움집이 사라져 많은 아쉬움을 남겨주고 있다.

선사시대 유적지는 주로 강가에서 발견되는데 지금은 사라졌지만 고리울 내가 있었고, 굴포천과 안양천이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장마와 서해조수 만조 때가 만날 때는 봉배산 아래까지 물이 들어 왔으리라 이해를 하면서~

마을 공동 작업장과 움집이 발견되었다는 곳은 이용하지도 않는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움집은 신석기시대부터 파기 시작했는데 둥근 원형 형태였고, 청동기시대는 4군데 말뚝을 박아 사각형모양으로 무두질, 짐승의 뼈로 바느질도 하고, 야생누에로 비단옷을 입기도 하고, 모피를 입기도 하였다. 또한 주로 농사를 지었고, 어망추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저장을 하거나 말려서 먹기도 하였다.

 

바닥평면이 긴 네모꼴 움집자리들이 산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지어진 마을 유적들이 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전형적인 입지 조건과 환경을 갖추었는데, 움집은 한강유역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것이 발견되었고,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갈아서 만든 반달돌칼, 돌칼, 돌도끼, 돌화살촉, 구멍 뚫린 도끼, 제기형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봉배산 정상에 오르니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인 “적석환구유구”라는 유적지가 있었다. 적석환구유구는 적석(積石) 주위로 고리모양의 도랑이 형성되어 있고, 환구(고리모양의 도랑)는 적의 방어나 공간의 구획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제기형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적석환구유구는 삼한시대에 있었던 신성한 지역인 ‘소도’의 원형이라고 한다. 제사터가 발굴된 것은 부천이 유일하다고 하는데, 중요한 유적지가 제대로 보호 받지도 못하고 방치되어 있으니 미래세대인 아이들에게 선조들의 얼과 생활상, 지혜, 우리 마을의 역사이야기를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늘과 땅,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새로 숭배를 받던 ‘봉황’을 가리키는 봉배산이다.”

글·사진 | 김인숙 콩시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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