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를 둘러싼 오해들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같은 일터에서의 문제를 주로 상담하는 저에게 근로계약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 내지는 ‘결정적인 증거’와 같은 역할을 종종 합니다.
물론, 실제 근로현실과 근로계약서가 너무 다를 경우에는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말입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서는 어떠한 의미일까요? 아마 회사와 맺은 근로조건에 관한 ‘약속의 증표’ 내지는 ‘최후의 무기’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근로계약서가 일할 때 꼭 써야하는 가장 중요한 서류인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막상 상담을 할 때는 근로계약서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바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들을 제한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일한 회사에서 퇴직하였는데 퇴직금을 받지 못해 고민인 아저씨께서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문의하시기도 하셨는데요. 퇴직금은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1년을 넘게 일한 경우에는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경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까 산재신청도 당연히 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산재신청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4대 보험 가입을 하지 않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위의 경우들과 달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법에서 보장된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으로 일하기로 계약했다 하더라도,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내용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당연히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결근하거나 지각시 벌금 규정이 있거나, 최소 근로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임금을 삭감하거나 지급하지 않기로 계약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의 위약예정 금지 조항에 위반되기 때문에 무효입니다. 즉, 근로계약서에 위법한 내용이 있으면 그것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기준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보다 더 낮은 조건이라면 아무리 계약을 했더라도 무효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근로계약서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경우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겠죠.
근로계약서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17조를 보면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근로자에게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명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를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일터에서는 아직도 근로계약서 없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많고,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시에는 사용자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데, 노동자가 먼저 자발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오히려 회사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최근 고용노동부는 ‘전자근로계약서’를 확산하기 위한 가이드 라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pc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고, 근로계약서의 교부도 쉬어진다고 합니다.
종이와 펜으로 근로계약서를 쓰라고 해도 잘 안 지켜지는 마당에, pc나 스마트폰으로 쓰라고 하면 좀 달라질지 미지수입니다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아이디어를 동원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일터가 더 많아진다면야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그래야 우리 노동자들이 더 안심하고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까요!
 
글 | 부천시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센터 상담실장
서 창 미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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