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엔 빨간 악어를 만나러 간다
 
이향숙
 
 
 
부천남부역 자유시장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악어가 산다
 
아홉 살 아이가 두리번두리번 뒤지던 골목 끝
막걸리 소주 안주일절 따위가 빨간 고딕체로 유리창에 박힌
대폿집 앞에선 아버지의 노랫소리 들린다
 
짧은 원피스의 언니가 빨간 손톱의 나이 든 악어가 나와
단숨에 긴 송곳니로 아이의 목을 물고 흔들던
휙! 바닥에 아이를 내던지고 늪의 문을 꽝! 닫던
 
선술집 반투명 유리창 안에선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가
돌아가는 삼각지에서 길 잃은 아버지가 앉아 있다
바람은 차고 발목이 짧은 홑겹의 바지는 팔랑거린다
 
끊이지 않고 이 골목에 바람 부는 날
송곳니 자국 컥컥 숨을 막아서던 자유시장에 간다
남부역 빨간 악어와 맞짱 뜨러 간다
내 안이 어두워져 더는 어두워질 것 없어 목젖이 부풀면
돌아가는 삼각지 부르러 간다 막걸리 한 잔 따르러 간다
 
 
 
 
이향숙 프로필
* 2013년 『시와소금』 등단
* 부천여성문학회 부회장, 부천문인협회 사무국장
* 2016년 부천예술상 수상
* 시집 『빨간 악어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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