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일기예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하루의 시작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고 하루가 원만하기 위한 계획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대기의 변화가 심한 요즈음엔 자주 일기예보를 불신하게 만드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기예보는 보도 직전이 가장 정확하다는 이야기가 상징적이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거는 우리의 삶과 생활에 매우 밀접하고 그 만큼 영향도 지대하다. 그래서 후보자 선택은 신중한 결정을 강요한다. 결정의 요인인 자료는 후보자의 됨됨이를 통해 알 수 있지만, 그 한계가 있어 후회가 따르고 극복에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물론 정당 내에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검증하지만 그도 완벽하지는 않다.
 
후보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날씨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음이다. 더군다나 지나간 이력이야 서류에 나타난 자료로 알 수 있지만-그도 의도적인 위조의 경우도 종종 있지만-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공약이나 내세우는 비젼은 더욱 불명할 따름이다.
 
그래도 ,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야 한다. 의심(疑心)은 일이나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의아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의심은 무슨 까닭인지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냄새(?)가 풍긴다. 때문에 ‘속고만 살았는지 의심이 많아’라는 말은 매우 상투적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의문(疑問)이 떠오른다. 의문은 의심스럽게 생각하거나, 또는 그러한 물음이다. 의문은 의심이 과거적인 측면이 있는 것에 비해 현재적이거나 미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이나 알 수 없는 사람에 대해 가늠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의심보다는 의문이 심지어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것은 후회의 유무에 관련되고 개선의 여지와도 상관이 있어서 일 것이다.
 
지나가고 나서의 깊은 후회는 아픔과 함께 부정적인 기제로 상흔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의심은 안타깝고 아쉬움 또한 길다. 이와는 달리 의문은 깊어야 하고 그럴수록 아픔과 후회가 얕을 수 있고 짧아진다. 때문에 후회할 것인가, 예방과 대비에 힘을 기울일 것인가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봄을 지나 본격적인 한 해의 봄 농사를 시작하는 청명과 한식이 지나도 기후는 추위라고 해야 할 날씨가 이어진다. 잘못 예측한 날씨는 감기로 응답하기가 십상이다. 선거의 계절에 후보들의 품격에 대한 판단은 남의 일이 아니고 나의 문제이고, 그 결정은 우리의 내일과 미래에 대한 소중한 선택이며 그 보답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고 의무이다. 의심과 의문의 거리에서 유권자인 우리에겐 투표보다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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