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래
♀ 다섯째

2016년 비오는 어느 날,
서울 은평구 산새마을에서 구조됨.
각종 실 먹기와 화장실 휴지 풀어놓기가 특기
야옹대신 신음 비슷하게 소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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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나랑 처음 만날 때 기억해?
지인이 페이스북으로 널 입양할 사람을 구했는데 네 모습에서 모모가 생각나서 지금도 왜 그랬는지 내가 키우겠다고 했지. 그러고선 널 만났는데 왠 걸 너무 작아서 순간 겁이 났어. 내 손바닥보다 더 작았던 너, 쌕쌕 잘 자고 있었지.
이유식을 먹이라고 했는데 네가 이유식을 잘 못먹었어. 어떻게 먹는지 잘 모르는 듯해서 분유를 사서 먹였지. 4시간마다 시간 체크하면서 먹여 키웠단다.

기억이 나. 근데  배부르지 않았어. 늘 허기가 졌어. 그때 왜 나 자주 안아주지 않았어?
그건, 네가 너무 작아서 겁이 났어. 열심히 케어하면 오히려 널 데려갈 까 겁났고, 정들었다 잘못되면 어떻하지 겁났고, 네가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하고 겁이 너무 많이 나서 품에 많이 안아주지는 않았어. 하지만 늘 따뜻하게 해주었고 외롭지 말고 널 지켜주라고 인형도 옆에 놔뒀어. 내가 겁이 쓸데없이 많아서 그래, 이해해줘.

내 특기가 뭐야? 사랑스러운 것을 얘기해줘도 돼.
너는 실이나 머리카락을 너무 좋아하더라. 좋아만 하면 되는데 아주 입으로 물어 뜯어. 그게 너같은 고양이들한테는 위험한 일이야. 실이나 머리카락 좀 먹지 말아줘.

너무 재밌지 않아? 그 긴 것을 입에 넣으면 질겅질겅 계속 계속 입에 감겨. 그래서 난 집사언니가 바느질이나 뜨개질 하고 있을 때가 제일 신나는데 요즘은 도통 안하던데 무슨 이유야?
너는 실을 먹다 못해 바늘까지 달려있는 걸 먹어서 아주 놀랐던 거 기억 안나?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나의 부주의로 네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자책에 자책을 얼마나 했는지. 너무 태연한 모습에 순간 바늘이 없었던 건 아닐까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하고, 그렇게 믿고 싶었고 믿었지만 분명히 실에는 바늘이 꿰어져 있었음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던 날이었단다, 모래야.
10시 넘은 시간에 너를 들고 24시 동물병원에 가는게 좋은지를 머리싸메고 고민하다 전에 수의사선생님한테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 진정하고 또 진정했었어.
토하거나 밥을 안먹으면 바로 처치를 해야하지만 크게 아이가 탈이 없으면 바늘은 하루 지나면 대변과 같이 나온다고. 위나 장의 점막이 바늘로 뚫릴 확률이 적고 오히려 처음 바늘을 먹었을 때 잘못돼서 입이나 식도쪽에 상처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생생히 기억해냈음에도 불안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
내 마음 편하자고 아주 태평하다 못해 똥꼬발랄하기까지 한 너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맞는지 이틀동안 마음잡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가 봤잖아?
네 뒤 졸졸 따라 다니면서 변을 보면 조각조각 잘게 잘라보는 변태짓을 하게 만들었으면서. 너의 변과 함께 나온 바늘을 보고 나서야 화가 나더라구. 바늘 간수도 못한 나한테서.
그때 놀란 건 아직도 말로 할 수 없어. 그 후에 각종 바늘과 실은 꽁꽁 숨겨놓았어. 나도 미치게 바느질이나 수를 놓고 싶고, 뜨개질을 하고 싶단다. 누구 때문에 못하고 있지만.

그래서 요즘엔 집사의 긴 머리카락을 호시탐탐 노리며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 어서 빨리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했으면 하는데?
나도 하고 싶은데 너랑 상어 때문에 못하잖아. 집을 나두고 어디 다른 곳 가서 하는 것도 우습고. 곧 겨울이고 작년에 사 둔 실도 한바구니 있는데, 나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상어가 너무 과격한데 집사로서 뭔가 해결해줘야 하지 않아?
상어랑 노는 게 너도 아주 싫은 것은 아니지? 보면 둘이 좀 비슷하더라. 너도 은근히 엉아들에게 슬쩍 다가가 물던데. 컸다고 그러는 거야, 아니면 놀자고 하는 표현이야?
얼마전까지 막내라 너한테 시간 많이 내주었는데 상어에 치여서 너에게 소홀한 것은 미안해.
조금만 더 기달려 주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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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어
♀ 여섯째

2016년 겨울, 성남시 한 초등학교에
누군가 막 버리려는 것이 목격되어 구조됨.
산만하고 눈인사를 해도 아는 척 안함.
모든 건 무는 것으로 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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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다른 냥이랑 라임이 다르네?
네 이름은 선경이(집사 조카)가 지어준거야. 상어가 뭐야, 고양이 체면에…… 게다가 상어처럼 막 물어대니 아무래도 네 이름을 잘못 지었나보다.

내가 이 집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추운 겨울 학교에서 술취한 아줌마가 널 버린 걸 본 선경이가 구조한 후 할머니 집에서 맡겼어. 거기서 한 6개월 살았는데 낮에는 다들 밖에 일하러 나가니까 늘 혼자인게 걸리기도 했어.
그런데 네가 크면서 자꾸 무니까 아마 무는 걸 피하다가 힘조절을 못해서 일거야. 삼촌한테 네가 맞았다는 소리를 듣고 선경이가 바로 이튿날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
벌써, 반년이 지났네. 상어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응. 일단 혼자 안 있어도 되고, 심심하면 모래 누나랑 신나게 놀고. 그런데 왜 나에게 가끔 미친놈이라고 하는 거야?
상어는 다른 냥이들에 비해 무는 게 심한데 고칠 생각은 없어? 다른 누나랑 형들이 너무 힘들어 해. 너로 인해서 이곳의 평화가 많이 깨졌어.
물 때 같이 물거나 좀 릴렉스 하라고 쓰담쓰담 하면 넌 더 미친 듯이 더 물잖아. 그래서 미쳤다고 얘기하는 거지. 애증의 표현이야.

원래 신기하거나 궁금한 건 냄새맡고 핥아보고 물어봐야 알 수 있잖아. 난 모든게 궁금할 나이의 캣초딩인데 물고 장난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엉아들이나 누나들도 올챙이적 생각을 해보라고 해.
아니, 아니. 너 캣초등 아니야. 컸어. 이제 좀 의젓해야지. 상어, 너는 정도가 너무 심해. 엉아들이 토를 너무 자주하고 심지어 세모 형의 오줌테러 빈도가 심해졌어. 무는 걸 못 그만두겠으면 적어도 살살 물어주면 안돼? 나는 여름내내 두 팔에 난 상처 때문에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을 하고) 난 엄마랑 형제들과 관계에서 교육을 받았어야 할 나이에 혼자 살아남아서 무는 힘을 조절할 수가 없어. 무는 건 무조건 힘껏, 있는 힘을 다해야지.
그래도 조금씩만 살살 물어 줘. 아니다. 이것도 한때겠지? 조금 더 커서 호기심이 살짝 다운되면 지금만큼은 아니겠지? 시간이 약이겠구나, 하고 나는 참을 수 있는데 형아들한테도 그렇고 모래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그것만 좀 노력해주면 안될까? 약속하면 내가 앞으로 미친놈이라는 소리는 다시 안할께. 약속해(근데 내가 왜 약속을 해야하지?).

집사가 그렇게 부탁하니 좀 생각해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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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모모에게서 온 편지


고마워.안녕~

내가 고양이 별로 온지 벌써 두해가 지났네
시간이 참 빠르네
너희들과 사네 못사네 하던게 엊그제고 갑자기 아파서 먼저 별로 여행을 떠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치?
잘 지내고 있어?
난 잘 지내고 있어.
이곳의 생활은 비밀이야. 너희에게 이것저것 할 얘기가 많지만
막 떠들어댔다가는 너희가 또 후생에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서 억지로 참고 있어.
다시 고양이로 태어나도 좋다면 살짝 손들어. 손 든 녀석에게만 귀뜸해줄게.
모찌 오빠는 정말 보고 싶었어.
엄마랑 떨어져서 낯선 차 트렁크에 있다가 집사언니집에 오게 되었는데
모찌 오빠가 있어서 너무 안심이 되고 든든했어.
엄마 같고, 아빠 같고, 언니 같았던 오빠.
나를 엄청 귀찮아 했지만 그래도 난 오빠가 좋았어.
오빠만 졸졸 따라다녔지.. 그래서 집사언니가 엄청 질투했던 거 기억나?
우리 둘이 쇼파에서 자고 있으면 자기도 껴달라고 하면서 비좁은 사이로 비짚고 들어오면 냅다 무시하고 일어나서 가버린거. 은근 재밌었는데 어이없어 하면서도 약올라 하는 집사 언니 놀리는 거, 그치 오빠?
오빠랑 11년을 같이 있으면서 서운한게 생각났어.
내가 정동 5층 아파트에서 새벽에 창문으로 도망나갔을 때
집사언니가 그러던데 나 찾지도 않고 오히려 신나서 갖고 장난감으로 한바탕 놀고 있어서 얄미웠다고. 그렇게 둘이 껌딱지처럼 붙어있어놓고 아쉬워하지도 않는지 서운했다고.
오빠가 나가서 나를 찾아낼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나 때문에 늘 치여서 하고 싶은 거 못하고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있고 호기심 없는 척 하느라, 관심과 사랑받고 싶은데 내가 늘 먼저 나서서 오빠가 기회를 늘 놓쳐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집사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있어서 아마도 그 뒤로도 계속 내가 가출을 일삼았나 싶어.
처음에 혼 좀 내주지 그랬어. 그럼 내가 집사언니 속을 좀 들썩였을텐데.
다양한 방법으로 가출하는 재미가 참 솔솔했어. 정동에 있었을 때, 난 재미있었어.
옥상도 가보고, 4층, 3층, 결국에 아지트가 탈로나서 늘 잡혀왔지만 결국 가고 싶었던 옆집 성당 마당을 못가봤다, 오빠.
그래도 이곳이 그 마당보다 좋으니까 괜찮아.
오빠 좀 천천히 와, 우리 천천히 보자.
멍청이 집사언니를 보니 나를 보내고 한참 힘들어 하더니 잘 지내나 싶었는데... 결국 어처구니없이 길냥이를 그것도 두 마리나 입양했더라구.
뭐야. 우리 둘도 힘드네 어쩌네 하다가 한 아이씩 차례로 입양하더니, 나 때문에 더 이상은 안키운다 후회하더만 두 마리를 6개월 사이에 입양을 했어.
내가 그렇게 상처를 줬나? 그렇지 나의 존재감이 두 마리 그 이상이긴 하지만.
어디가서 변기에 쉬를 알아서 하는 고양이 있겠어?
손으로 현관문을 열어 나가지 않나, 복도 창문을 열어 나가지 않나, 욕실 창문을 통해 보일러로 나가 보일러문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리고 5층 다른 여러 집을 두고 집앞에서 문열어 달라고 하는 이 영리하고 아름다운 고양이는 나밖에 없었겠지.
그래도 이번에 들어온 두 마리는 하는 짓이 유별나서 애를 좀 많이 먹던데 왜 그랬어, 집사언니!
난 잘 있으니 나한테 아직도 미안해하지마.
아픈게 언니 탓은 아니잖아. 어차피 복수가 많이 차서 오래 있을수록 난 고통만 더 심했을 거야. 마지막에 여러 병원을 간게 좀 스트레스고 무서웠지만, 지푸라기도 잡고 싶었을 언니 마음 이해하니까 자책하지마. 언니도 많이 무서웠던거 여기 와보니 알았어.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잖아.
내 이름도 자주 불러주고. 집사언니 꿈에도 가끔 가는데 언니는 아직도 미안한 맘이 앞서니까
나를 만나 걸 기억못하는 거야. 시간이 좀 더 지나 언니 맘이 편해지면 더 자주 놀러갈게.
건강하고. 나처럼 아프지말고.
아니다 갑자기 떠나는 게 낫나, 나처럼?
죽음이라는 이별이 살아있는 생명에겐 여전히 낯설어서 어떤 방식이든 다 힘들테니, 그건 운명에 맡겨야지 안되겠네, 그치?
남은 아이들과 모찌 오빠 옆에서 오래 있어줘, 집사 언니!
마지막으로 세모, 방울이에겐 특별히 살가운 얘기를 남기기가 민망하네.
8~9년을 같이 살면서 내가 누나, 언니로서 못챙기고 오직 모찌오빠 옆에만 있어 미안했어.
고양이별에 오면 그때 정말 가족처럼 잘 지내보자.
너희들도 좀 천천히 오고.
그럼, 이젠 안녕.
또 어쩌다 편지쓸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잘 지내.

 

<언니네 글밭>은 2017년 여러가지연구소에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하고 소통하고자 글 씨앗을 뿌린 여성주의 글쓰기 모임입니다. 작은 책으로 출판한 언니네 글밭의 글을 콩나물신문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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