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시가로 보는 현대인의 삶-3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서 또다시 익숙한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마다 자기 이름을 커다랗게 쓴 간판을 들고 인사들을 한다. 그러다가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곧바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절대 권력자로 돌변할 것이다.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기꺼이 국민들의 종복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후보자들을 볼 때면 그들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안쓰럽다.

<구지가(龜旨歌)>의 첫 구절은 ‘신이시여 우두머리를 보내주소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는 ‘신이시여 머리를 드러내소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신에게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기원하는 것으로 보거나 신이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내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주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모두 그 이면에 깃든 민중들의 심정이 느껴진다.

고대사회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처지는 지금의 우리와 비교하여 그 암담하고 답답함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과학적 지식도 없었고 초고속 정보망도 없었을 테니 천둥 한 번 비바람 한 차례에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곡식이 영글지 않아도 원인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질병에 시달려도 치료법을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암울한 삶에서 희망이 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아 알고 자신들을 이끌어줄 신과 같은 지도자였으리라.

그런 지도자는 혈통으로 되거나 구전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역량을 뛰어넘어 가장 슬기로운 삶의 길을 제시해줄 지도자는 어떤 교육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신에게 간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운명적인 것임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신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것뿐이었으리라.

이제 이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시대에 우리 사회의 지도자를 얻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선거라고들 한다. 그러나 다수 대중들의 선택이 늘 신의 그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음을 동시대의 역사가 이미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슬그머니 이 선거의 방법이 두렵다. 가장 공정하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알려진 것이 오히려 고대사회의 가장 원시적인 방법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 우리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들의 선거는 <구지가>의 기원처럼 간절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검토하고 선별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하여 투표로 의사를 표명한 사람들이 참담한 결과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찍는 표 한 장이 신에게 기원하는 의식의 정점처럼 신성하고 고결하고 경이로운 제의와 같다는 사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가벼운 종이에 표를 찍으나 그 작은 결정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역사와 문화, 그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까지 오래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알고 신에게 기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건 그렇고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대사회에서 지도자들이란 자기 능력 밖의 천재지변에까지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놓았던 가장 대표적인 희생양들이었다는 사실을. ‘신이시여, 머리를 내놓으소서’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