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시가로 보는 현대인의 삶-12

도시생활에 찌들어본 사람이면 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풀과 나무와 햇살을 그리워하는 존재라는 것을. 창밖 풍경으로 맞은편 아파트 창문이 들어오기보다 넓고 푸른 하늘과 찬란하게 빛나는 신록이 더 좋다는 것을. 낮과 밤으로 차량들과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더라도 훨씬 더 견딜만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도시의 현란한 불빛이 아니라 해지고 난 뒤의 적막과 예상을 깨고 시야를 뒤덮는 별빛들이라는 것을.

본질적으로 인간은 자연적이다. 자연에서 난 존재이므로 자연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이므로 자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못하니 아파트 베란다에 여러 가지 화분을 들이고 귀찮더라도 반려동물을 기르고 인근 공원이라도 산책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행위들이다.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원주택을 찾고, 캠핑을 감행하고, 꽃과 물과 산을 사진으로 담는 도시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모두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에 기반을 둔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다.

여기 고려가요 <청산별곡>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 역시 자연을 그리워한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얼핏 보면 나물이나 캐먹으면서 산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머루나 다래를 먹으며 청산에서 살고 싶다는 고려인의 저 노래는 궁극적으로 현실 도피로 마무리된다.

가다니 배부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오니 내 엇디 하리잇고

현실의 괴로움이나 고통을 벗어나 청산이나 바다로 피해서 살고 싶지만 그래도 결국 이기지 못하니 술이나 마시지 어찌하겠는가 하는 것이 <청산별곡>의 결말이다. 아름답게 시작한 노래가 결국 현실 도피의 나약한 결말로 치닫는 것을 지금 시대에 다시 읽는 일은 씁쓸하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늘 새로움을 준다. 그것은 현실 도피의 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경험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을 그리워하며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하여 더 치열하게 현실과 맞닥뜨려 어떻게 견디고 이기며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러니 똑같은 자연을 바라보더라도 그 의도가 중요하다. 현실 도피의 자연을 바라보는지 현실을 이기고 더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한 치유의 자연을 바라보는지. 우리의 의도가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바꾼다. 지금 나의 의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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