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시가로 보는 현대인의 삶-4

이름도 확정되기 전부터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바이러스의 힘은 지금까지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급속도로 늘어가기만 하는 사망자들의 숫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 존재의 무기력함을 절감한다. 더구나 이 악독한 질병의 재빠른 파급 속도가 인간들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利器)에 편승한 것이라는 사실은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늘을 날 줄도 모르고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이 병균에 대항한 방식의 하나가 8구체 향가 <처용가>에 나온다. ‘처용’이 서울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놀며 다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었다. 둘은 아내의 것이니 내 것이지만 둘은 뉘 것인지 모르겠다. 처용은 본디 자신의 것이지만 빼앗겼으니 어쩌겠는가 하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며 집을 나온다. 아내와 함께 동침하고 있던 존재는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이었는데 처용의 너그러움에 감복하여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자백한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는 처용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처용가>는 대표적인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노래이다. 요사스러운 것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각종 질병은 곧 귀신의 짓이었고 그 귀신을 잘 달래서 떠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고대인들의 사유방식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처용은 아마도 샤먼이었을 것이다. 그가 노래하고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것은 결국 그가 주도한 질병퇴치 굿이었으리라. 질병을 귀신의 짓으로 보고 그것을 굿으로 달래서 떠나게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비과학적인 태도이긴 하다.

그러나 목숨을 잃거나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았던 무서운 천연두를 아내와 동침한 남성으로 의인화했던 옛사람들의 해학을 생각해본다. 또한 질병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돌이켜본다. 김춘추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미혼여성의 부정(不貞)조차 화형으로 응징하던 시대였다. 그 엄혹한 시절에 자신의 아내가 외간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처용의 태도가 결국 귀신을 감복시켜 떠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관용의 자세는 현대사회의 과학을 넘어서는 지혜를 가르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새로운 질병의 등장으로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고 혐오하는 모습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병리 현상은 오히려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이런 흉흉한 시절일수록 우리는 <처용가>의 슬기를 배워야 한다. 화내지 않는 것, 미워하지 않는 것, 웃음을 잃지 않는 것, 넓은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 등은 바이러스 따위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만의 고귀한 덕목임을 기억했으면 싶다. 인류는 결국 고결한 정신으로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가장 위대한 종족임을 우리 스스로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