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미쳐야 한다

 

 

자전거에 미치다 

2001년 다음카페에서 자전거 검색으로 회원 수 제일 많은 카페를 가입하고 초기에는 일명 눈팅족(눈으로 보기만하고 글쓰기나 댓글을 달지 않는 사람)으로 활동하다가 2002년 2월 또래들보다 4년이나 늦게 다닌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나이는 있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짜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관련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 나에게 취업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5년3개월의 총무, 경리 경력으로 다른 곳을 지원해볼 수도 있었지만 전공을 살려서 컴퓨터 분야의 회사로 취업하길 희망했었다.

매일 취업사이트를 들어가고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문득, 내가 아직 고생을 덜해봐서 지금이 힘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작정 자전거동호회 카페에서 제주지역 번개모임을 보고 즉석으로 비행기표를 검색하여 예매하고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보게 되었다. 땅 위에 길과 점점 멀어지고 하늘에서 보이는 길은 푹신푹신 편안할 것 같은 구름 길 이었다. 예쁜 구름 길을 여유롭게 감상할 틈도 없이 다시 제주의 멋진 바닷길이 보이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굉장한 설레임이고 기쁨이었다.

제주의 해안도로를 따라서 애월로 향하면 완만한 길부터 시작하여 바다구경도 하고 즐겁게 갈수도 있었지만, 번개 모임의 코스는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유사산악자전거만 탔었던 나는 처음으로 24단 자전거를 타면서 기어변속조차 서툴러서 일행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친절한 회원님들은 나의 옆에서 계속 기어 변속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나를 1일차 목적지인 우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금도 자전거동호회 카페에 그때의 기록이 남아있어 언제든 다시 보며 기억을 되살려볼 수 있다. 제주일주를 계획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정보가 되었고 나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2일차는 중문까지, 3일차 마지막 날은 비까지 맞으며 정말 고생스럽게 비행기시간 맞추느라 온몸에 힘이 다 빠지도록 페달을 굴렸다.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나니 뿌듯한 기쁨과 함께 내가 제주 일주를 해냈다는 자신감, 성취감에 집으로 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시 구직활동을 하던 일상의 길로 돌아오고 며칠 뒤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콜센터 컴퓨터전문상담사 계약직 합격소식과 수원 본사로 출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합격 전화를 받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취업사이트를 열심히 보고있다가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받으며 했던 생각도 아직 생생하다. 삼성에 뼈를 묻으리라…

남들이 다 좋아 보이는 길이 꼭 내가 좋은 길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인사평가를 위한 시험과 실적이 이해되지만, 그때는 나를 숫자로 보는 것이 싫었고 점수로 평가되는 모든 시스템이 불편해서 정직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는 동기들이 존경스럽다.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고 열심히 가면 된다. 남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무작정 떠났던 사서 고생의 낯선 길이 나에게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좋은 길을 선물해주었고 지금도 제주도는 나에게 의미 있는 길이 되었다.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제주일주를 다녀왔고 10년후 아이들과 함께 일주하자던 약속은 11년만인 2014년에 초등3학년, 1학년 아들들과 함께 제주일주도 다녀왔으니 제주의 길은 나에게 특별하다.

젊은이의 사서 고생도 의미 있고 낯선 길에서 찾는 의미와 기쁨도 소중하다.

도전 해보자! 내가 평소 하고 싶지만 못했던 미친짓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자전거동호회에서 인생을 바꾸다 

제주일주를 다녀온 후 자전거에 대한 즐거움이 나를 계속 깨우고 있었다. 자전거 동호회 카페에서는 매일같이 자전거 번개모임, 정기모임, 전국정모 등이 올라오고 때때로 잠실 한강 자전거 길에서부터 여의도까지 다녀오는 글을 보며 나도 한강 자전거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쉬는 날 집에 묵혀두었던 자전거를 타고 성남에서 잠실까지 버스 타고 갔던 기억을 더듬어 자전거로 달려 달려 가다 보니 정말로 한강이 나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가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가다니~ 기쁨도 잠시 여의도까지 도전해봐야겠다 생각하고 또 무작정 페달을 밟아서 63빌딩이 보이는 여의도에 도착했다.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해서 내가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에 와있다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알렸으나, 축하는커녕 “너 미쳤냐?” 라는 말만 듣고 그냥 혼자만 기뻐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정기모임에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고 2002년 9월 첫 능내 정모에 참석하게 되었다. 회비보다 비쌌던 헬멧도 사고 장갑도 사고 집에 있던 휴대용 버너도 챙겨서 약속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먼발치서 한 명씩 한 명씩 도착하는 모습을 보니 자전거 선수들 같았다. 멋진 옷에 멋진 자전거! 순간 내 모습이 초라해 보여서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선 입금한 회비가 아까워서 약속시간이 거의 다되어 인사를 나눴다. 생각보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회원들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3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능내로 출발했다.

평소에 언덕 많기로 유명한 성남 언덕길을 자전거 타고 다녀서인지 능내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능내 정모를 시작으로 주말 번개는 물론이고 평일 영등포 저녁 번개까지 신나게 다녔고 많은 사람들도 만났다. 온라인에서 이야기 나누고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이야기 나누고 24시간이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무엇보다 활기차고 즐겁고 신나게 활동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춘 남녀의 로맨스가 시작되었다. 나의 겉모습이 아니라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을 좋게 보았는지 따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 회원들이 적극 추천해주고 연결해주었던 한 사람과 모두의 시기질투를 받으며 만나다가 11개월 만에 결혼하고 두 아들과 잘 살고 있다.

우리 가족과 꼭 가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길이 있다. 첫 번째는 제주일주였고, 두 번째는 국토종주이고, 세 번째는 철인3종 경기이고, 네 번째는 세계일주이다. 국토종주 자전거 길은 내년이 목표이고 철인3종 경기는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마추어 철인이라도 도전 해보고 싶고 세계일주는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당장이라도!

길 위에서는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인연이 되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그 길에서 나처럼 남편을 만날 수도 있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고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길에서 만나는 인연은 참 소중하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길이나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은 더욱 소중하다.

2013년 국토종주에서 만났던 독수리 오남매와 두 삼촌은 지금도 종종 소식을 주고받고 첫날 묵었던 양평힐링센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따님과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 나는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길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자. 나에게 도움을 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내가 도와줘야 할 이도 있을 것이고 마음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길은 인연을 만들어 준다.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한강 선상 결혼식과 자전거 퍼레이드 

지금 나의 성격은 외향적이고 활발하고 긍정적이고 밝지만, 어렸을 때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서 엄마랑 하루 종일 같은 방에 있어도 혼자 놀기만 하지 말 한마디 안하고도 잘 지내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내성적인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누가 옆에 와서 말만 시켜도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믿지 못할 이야기지만 그땐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말부터 엄마가 웅변학원을 보내주었고 그 뒤부터는 조금씩 말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하게 되고 오랜만에 만난 이모는 말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말만 는 것이 아니라 웅변대회에 가서 상도 많이 받았다. 덕분에 나는 전교에서 내 이름은 몰라도 웅변이라고 하면 기억나는 친구가 되었다. 한창 아이러브스쿨에서 만났던 초등학교 동창생들도 웅변이라고 해야 나를 기억했다.

내성적이었던 아이는 웅변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전산부 동아리 회장을 맡으며 대 선배님부터 동기, 후배들을 챙기며 동아리를 이끌어가느라 이야기꾼이 되었다. 때때로 공중전화 박스에서는 5기부터 12기까지의 주소록을 가지고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모임을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후배들이 내 맘 같지 않을 때는 놀이터에서 달을 보며 우는 날도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모여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후배들과 다 함께 모이는 자리는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고 준비하고 진행했던 경험 덕분에 지금도 모임을 만들고 진행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내 결혼식도 예식장에서 찍어내는 결혼이 아니라 좀더 즐겁고 신나는 결혼식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 남편은 프로포즈 언제 할거냐는 나의 성화에 회사 스튜디오에서 셀프 카메라로 프로포즈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었고 감동의 눈물로 평생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유튜브에 비공개로 올려놓은 영상을 다시보기 한다. 남편 촬영감독님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위해 가족들의 덕담을 영상으로 제작했고 아내 이벤트 총감독님은 뚝섬 선상 웨딩 후 자전거시민단체 회원님들과 자전거 동호회 회원님들과 모두 함께 뚝섬에서 김포공항까지의 자전거 퍼레이드를 기획하고 신혼여행은 자전거 제주일주로 정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축하해 주시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지금도 그때의 즐거운 에너지 유지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셨던 많은 자전거학교 국장님과 회원님들, 동호회분들, 선후배님들과 친구들 너무 감사한데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남편의 프로포즈 영상과 남편과 함께한 자전거 길의 추억이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남편과의 첫 정모 길에서의 만남, 속초 자전거여행으로 미시령 정상에서 먹었던 팥빙수, 을왕리 해수욕장을 간다고 슈퍼도 없는 지루하고 긴 길을 사탕 씹어먹으며 달리던 기억, 결혼식의 모든 준비와 이벤트가 즐거워서 친구들이 엄마 서운해하시겠다 하는데 그래도 입이 안 다물어지던 날, 제주일주 신혼여행을 하면서 갑자기 안가 본 1100도로를 도전해본다고 갔다가 힘들어 고생했던 일,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행복한 길에서의 추억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모든 시간들이 다 이벤트였다. 처음에는 참여만 하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고 재미있는 인생의 이벤트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나를 위한 이벤트를 만들고 나와 함께 신나게 이벤트를 즐기고 싶은 분들을 초대해보자. 즐거운 인생 여행길을 만들어 줄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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