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시루 '부천이야기탐방'

 “봉배산” 요즘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이름이다. 부천에서 30여년을 가까이 살았지만 그동안 그 이름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이름이기에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기억하기 쉽지 않았는데, 드디어 오늘 봉배산에 올랐다. 산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만큼 마을 뒷산 같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 속에 그동안 내가 모르던 부천의 비밀이 숨바꼭질하듯 곳곳에 숨어 있었고, 술래가 어디 있는지 의식도 못하고 지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밟히고 잘려 상처투성이로 또 한 시대를 고스란히 보내고 있었다. 

 봉배산은 청동기 시대를 살아왔고, 고려시대와 통일신라,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그 혼과 얼을 고스란히 품고 있음에도 이 시대를 지나는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에 부끄러움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철쭉이 환하게 핀 언덕을 지나 올라서 청동기시대 공동작업장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움집터라고 멈춰 섰는데 그 자리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어느 누구도 유적지라고 생각할 만한 푯말이나 표식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침, 선사문화제 행사로 모여 떠들썩하게 준비하는 아이들과 제를 재연하는 사람들, 행사를 주최하는 관계자들은 오늘 봉배산에 왜 올랐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유를 알고 있을까? 나또한 봉배산에 대해 콩시루(부천향토연구회)를 통해 듣지 않았다면 그들과 같은 무리 속에 한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끔씩 서울을 오갈 때에 지나던 경인고속도로가 봉배산의 모습을 바꿔 놓았고, 그 잘려진 산자락에는 어떤 흔적이 얼마나 어떻게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봉배산을 내려다보는 마음에 미안함이 스며들었다. 

 ‘적석환구유구’ 천신제를 드리던 터라고 한다. 원형 유지를 위하여 복토 된 그 자리엔 맥문동이 심어져 있었고, 청색 줄로 둥그렇게 위치표시를 해 놓았으나 그 앞에 세워진 표지판이 아니면 아무도 그곳이 유적이 묻힌 자리라고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동기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성스러운 제를 지내고 그 제단을 중심으로 양지바른 산 중턱에 움집을 짓고, 산 아래 바다에서 어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며 살던 그 모습을 그려보니 봉배산이 조금은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부천에 명산, 봉배산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불려 지길 애정을 가지고 기대해 본다.

  글. 이매희 구독자(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 회원)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