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 다섯 번째 이야기

파로의 탁상사원

부탄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 다섯 번째 이야기

 

▲ 탁상사원 가는 길

 마지막 두 밤은 파로에서 묵었다. 국제공항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예쁜 호텔이었다. 부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탁상사원 등반이다. 3150미터 고지에 있는 900미터의 바위절벽 틈에 길을 내고 사원을 만들었다. 부탄을 소개하는 사진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절경이다. 8세기 경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스님이 호랑이를 타고 와서 만들었다는 사원으로, 호랑이둥지(Tiger nest)라는 의미이다.

 탁상 등반 후에는 피로를 풀어준다며 ‘핫 스톤 바스’로 데려갔다. 반신욕을 하고 있으면 불에 달궈진 뜨거운 돌을 넣어서 수온을 올려주는 방식이다. 부탄 여행 광고에 나오는 깔끔한 현대식 시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등산객들을 상대로 영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호랑이 둥지라는 뜻을 가진 탁상사원

 부탄여행을 마칠 날이 다가왔다. 7박 9일이라는 긴 기간에 살짝 지친다. 부탄에 다녀왔다고 하면 ‘부탄가스’ 사왔냐는 아재개그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 ‘빤’을 내민다. 부탄은 담배를 생산하지도, 판매하지도 않는다. 여행 중에 담배 피는 사람을 본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담배를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튼 피는 사람은 못봤다. 대신 이 사람들은 빤이라는 것을 무시로 씹고 다닌다. 비틀넛이라는 나뭇잎에 뭔가를 바르고-라임이라고 했는데 박하처럼 향이난다-엄지손톱만 하게 자른 그 열매를 싸서 씹는 것이다.

 빤을 씹으면 침이 빨개지는데, 빤을 씹고 나서 뱉은 붉은 침자국들이 핏자국처럼 흉하게 늘려있는 모습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오래 씹으면 이가 붉어지고 잇몸도 검게 변한다.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이것을 보고 식인을 한다고 오해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개 400원 정도. 구강청결과 담배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타이거 데이 행사장에서 만난 농림장관이 씹어보라고 권하길래 한 번 도전해 보았다. 현지인들의 사용량보다 작게 해서 그랬는지 입안이 환하고 괜찮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도전했을 때는 어지러워서 5분 정도 쉬어야 했다. 운전기사마저 이것을 씹고 있으니 걱정스러웠다. 빤처럼 치아가 빨개지지는 않지만 민트향이 나는 대용품이 있어 많이 사왔다.

 

 면세점에서는 이 나라 5대왕의 취임기념으로 만들었다는 위스키 K5(K는 분명 King이겠지?)를 하나 샀다. ‘Essence of himalaya’라고 광고하는 술이다. 그러나 면세품 포장을 잘못하여 방콕공항에서 액체류는 반입금지라며 압수해버려 맛도 못봤다. 현지인들은 집에서 브랜딩한 ‘아라’라는 술을 주로 마시지만 상품화 되지는 않는다. 냉장을 하지 않고 마시니 독하게 느껴졌다. 진열대에 있는 술은 맥주와 위스키, 와인 정도인데 외국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맥주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상표는 모두 드럭(DRUG, 용을 뜻함)이다. 타시그룹에서 생산한 술이라고 한다. 이 그룹은 경공업, 중화학공업, 서비스업, 은행, 이동통신, 항공사, 학교 등 전 분야에서 40여개 기업을 거느린 거대기업이다. 이동통신, 항공 등에서 이들의 경쟁자는 국영기업뿐이다(박진도 이사장의 책). 이 그룹의 설립자는 4대왕의 외삼촌이다.

 

▲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라고국제공항

 마지막 날이라고 호텔로비에서 전통음악을 곁들인 몇 가지 공연을 보여준다. 그러나 축제는 현장에서 즐겨야 하는 법. 박제품처럼 어색하다. 공연하는 자와 관람하는 자가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공정한가? 관광업자들은 마을과 밭과 집을 헐어 호텔을 짓는다. 대신 토착민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을 증대시켜 준다며 부족의 성스러운 제의를 호텔의 쇼로 올릴 기회를, 호텔의 청소부가 될 기회를, 어린 딸들을 관광객을 위해 일하게 할 기회들을 제공해 주었다(임영신․이혜영, 희망을 여행하라, 이매진 피스).

 그들의 어린 딸들, 혹은 한 가정의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여인들이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낯선 관광객의 발을 만지며 피로를 풀어주는 것을 단돈 10달러로 누려도 좋은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관광객들 짐꾼 노릇 하느라 농사를 못한다고 하소연하자 국왕이 관광객 수를 제한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는 훌륭한 왕임에 틀림없다. 부탄의 관광객은 누구나 하루 200달러를 내야 한다(이 중 65달러는 정부가 가져간다. 성수기에는 250달러). 숙식, 가이드, 차량이 다 포함된 금액이라지만 적지 않다. 자연히 관광객이 제한된다. 그래서 농사에 힘을 쏟는가? 부탄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고 있고 일자리는 부족하다. 자살률이 세계 22위이며 마약치료센터가 7곳이나 있다고 한다. 개방과 도시화의 현실이고 비극이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부탄을 찾는 사람이 많다. 하루 200~250달러에 달하는 여행경비도 기꺼이 부담한다. 대만-일본-한국 등 매년 한 나라씩 정해 165달러로 할인해 주는 기회가 감사하기까지 하다. 올해는 수교 30주년 기념을 명목으로 우리나라가 할인대상이다보니 눈에 보이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한국사람들이다. 그들은 ‘부탄이 행복한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부탄을 찾는다. 부탄 사람들에게 묻는다. 정말 당신들은 행복하냐고.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행복한 나라라고 말한 적 없다고 대답한다.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는 나라라는 대답도 덧붙인다.

 그들이 행복한지 아닌지 따지러 비싼 비용 들여서 굳이 부탄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행복은 나의 행복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앵무새처럼 말하지만 누구도 북한 사람과 나의 행복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과 부탄은 많이 닮은 것 같다. 지도자의 사진을 벽에 걸고 배지로 만들어 가슴에 다는 것조차 비슷하다. 북한주민들은 정말로 행복하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볼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 5시간의 여유를 활용하여 방콕시내에 들렀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도 남을 정도로 주문할 수 있었다. 행복은 방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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