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협하는 “빚의 덫으로부터 탈출하기”

조금은 늦은 저녁,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K에게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지 싶다. 전화 내용은 이랬다. 조금 전 급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는데, 막상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란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럴 때 떠오르는 사람이 ‘나’인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은 이랬다.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50대 후반인 A가 건강이 나빠져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질병과 실직상태가 길어지면서 월세 보증금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당장 숙식을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구하기는 했는데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참으로 답답해지곤 한다. 부천시 총예산 중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은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니 말이다. 그래서 우선 상담 요청을 하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A를 만났다.

A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억척스럽게 일을 했지만, 월세방을 면하지 못하고 항상 가난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어찌어찌해서 주위 사람들 도움으로 무보증 월세방을 구하긴 했는데, 당장 가스를 연결할 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평소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K에게 전화를 했단다.

사진은 본문의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은 본문의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A가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A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공부조를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한단다(사실 현장에서는 이것과 반대의 상황이 훨씬 더 많이 생긴다). 나는 A를 설득하느라 긴 설명을 해야만 했다. ‘긴급지원제도’는 단어 그대로 긴급한 경우에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만65세 미만은 근로능력이 있기 때문에 공공부조를 받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질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월세를 내지 못해서 당장 쫓겨나는 상황, 실직으로 인해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진 경우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수혜가 아니라 ‘권리’임을 설명해 주었다. 또한 중한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 할 때도 긴급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하니 A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표시를 한다.

이럴 때 사회복지사가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후원금’이다. 부천지역의 후원재단에 전화를 했다. A의 상황에 대해서 대략 이야기하니 후원금 지원이 가능할 것 같다고 답해 준다. 참 감사한 일이다.

속담에 ‘가난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감출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에는 노동과 가난, 나이 들어서는 질병과 가난과 함께 살고 있는 A.  아픈 다리를 끌며 상담실 문을 나서는 A는 여전히 씩씩하다. 다리가 나아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국가의 도움이나 후원같은 것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맞는 말이다.

사회복지서비스가 수혜가 아닌 권리로 바뀐지 20년 정도 지났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훨씬 행복한 일이니 말이다.

무료 재무·부채상담은 032-675-2920 (사)일과사람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