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오기 전, 돌투성이 산에 집을 짓고 산 적이 있다. 척박한 산에는 나무도 적었고 채소를 가꾸기는 더 힘들었다. 가지고 있던 꽃씨를 여기 저기 뿌려놓았더니 그해 여름 뒤뜰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었다. 키워서 먹으려는 채소는 비료를 잔뜩 주어도 비실비실하더니만 먹지도 못할 코스모스는 물 한 번 일부러 준 적이 없는데도 순식간에 뒷마당을 점령해버렸다.

특히나 돌이 많았던 뒷마당에 코스모스가 기승을 부리던 가을 오후에 깨밭을 살피러 나갔다가 그것을 보았다. 돌벼랑 끝에 유난히 잔뜩 힘을 주고 피어서 왕성한 꽃송이를 자랑하는 코스모스 무리. 거의 나무줄기처럼 굵게 자라난 꽃대를 감탄하며 살펴보니 돌 틈으로 드러난 뿌리가 제법 요란스러웠다. 뿌리는 변변한 흙 한 줌 없는 돌무더기 사이를 비집고 마치 그 돌덩어리를 움켜쥐듯 강력하게 힘을 뻗치고 있었다. 이 한 무더기의 돌이나마 움켜쥐지 않으면 자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뚜렷한 힘줄기를 드러내며 그것은 생생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코스모스를 무심히 보지 않는다. 아니 가녀린 꽃 한 송이를 심상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가을이다. 코로나로 인해 단풍 구경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우울한 가을이다. 안전문자는 계속 우리의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라고 외친다. 산에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산 근처의 가을 정취나마 맛보기 위해 부천 인근 들판에 나가보았다. 예상보다 많은 코스모스들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반가웠다. 굳이 화려한 단풍을 감상하러 마스크를 쓴 인파를 헤집고 저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산자락에서 만난 코스모스 무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산에서 만났던 그 강인한 뿌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화려한 꽃의 색깔과 향기에 반한다. 꽃은 어떤 언어로도 묘사하기 힘든 다채로운 색과 향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씩 그 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 화려한 색과 향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뻗어 내린 그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뿌리는 단순히 땅 밑에 자리를 잡고 얌전히 버티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온 힘을 기울여, 전체의 생명을 다 걸고 땅을, 흙을, 돌덩어리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그 강인하게 움켜쥐는 힘이 저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저 작고 가녀린 꽃, 발로 밟으면 그대로 짓눌려 주저앉아 시들어버리는 연약한 풀줄기, 그러나 놀라운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빛깔과 향기, 이듬해에 다시 피어나는 절대적인 생명력.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온힘을 다해 움켜쥐는 저 절대적인 힘.

가을은 저 힘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이다. 화려한 꽃은 다음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한 절정의 몸짓이다. 현란한 단풍은 한겨울 일시적인 죽음으로 이듬해의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기 위한 최후의 약속이다. 가을꽃과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들이 생명을 품고 있어서이다. 다음에 더 찬란하고 화려한 생명을 가져오겠노라는 약속을 담고 있어서이다. 그 희망을 위해 깊은 뿌리가 온 우주의 힘을 다 기울여 한 생명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저 작은 꽃을 피우기 위해 저렇게 단단히 움켜쥐는 하나의 힘을 생각한다. 우리네 삶 역시 그렇지 않은가. 내 인생은 화려하게 피워서 죽고 이후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우주의 섭리. 내가 지금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는 힘은 무엇을 피워내고 어떤 약속을 담보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인가. 가을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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