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첫 째 날

독일에 왔다. 기차에서 내려 처음 본 넓은 광장에는 커다란 트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로 거리를 거닐고 그 거리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났다. 넓은 광장에는 분필로 각국의 국기를 그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는데 독일에 놀러 온 사람들이 자신의 국기에 동전을 던졌다. (중국이 제일 동전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주춤주춤하다 나도 국기에 동전을 던지고 왔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빨리 동전을 던지고 나와 보니 엄마가 찍은 사진도 흔들려 버렸다. 추운 거리를 지나 호텔로 가는 길에는 건물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볼 수 있었다.

먼 듯 가까운 듯 애매한 거리에는 옛날식으로 지은 ‘하이첼멘헨’호텔이 있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2박 3일 동안 묵을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았다. 들어가는 문과 나가는 문이 있었는데 나가는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간판이 나가는 문에 달려있었고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는 문 앞에서 발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전화도 해보았지만, 말이 안 통하니 속수무책이었다.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지나가던 행인에게 힌트를 얻고 문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방금 전 통화 한 사람이냐고 묻더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면 웃었다. 대충 알아들을 순 있겠는데 대답을 못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알라딘이 정말 있다면 첫 번째 소원으로는 무조건 삼 개 국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한국어, 영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어째든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방에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계단이 많다. 정확히 몇 층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나오겠지? 싶을 때 안 나오고 꼭 그다음 층 정도에 나오는 애매하고 힘든 층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방 앞까진 도착했는데…. 누가 그랬는가? 이게 우여곡절에 끝이라고! 방이 열리지 않는다. 열쇠를 이리 쑤시고 저리 쑤셔도 방은 열리지 않은 채 굳게 닫혀 있을 뿐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문을 열려고 다급한 모습으로 애쓰는 우릴 본다면 정말 수상해 보일 것이다. 방문과의 끈질긴 싸움 끝에 들어간 방은…. 와이파이가 안됐다.

와이파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와이파이는 있으나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와이파이는 없는 것보다 있는데 안 되는 게 더 짜증 난다. 자꾸 안 되는 와이파이를 붙들고 희망 고문을 당하니 짜증 날 수밖에. 숙소에서 조금 쉬다 보니 열이 나고 속은 울렁거렸지만, 독일에 온 첫날이니 밖에 나가기로 했다.

나갔는데…. 글쎄 비가 온다. 유럽에서 비가 오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지만 이 비는 너무 거세서 우산을 살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 들러서 싼 우산 하나를 사 들고 둘이 몸을 욱여넣었다. 독일에 오기 전 네덜란드에 꿍쳐둔 우산만 네 개쯤 되어 더 살 수가 없었다. 비가 오니 날씨는 더 쌀쌀해지고 정신은 몽롱하다. 얼마나 걸었다고 허리와 골반이 쑤셔온다. 우리 엄마도 아직 멀쩡한데 이런 거지같은 몸이 내 몸이라니.

결국, 오래 있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물과 컵에 담긴 수박을 샀다. 가격이 장난 아니라 어이가 없지만 지금 소화라는 단어를 모르는 내 몸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수박만 계속 찍어 먹는 내 모습이 독일을 갖다 줘도 못 받아먹는 불쌍한 사람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엄마가 사 온 전기장판에 누어 몸을 지지니 하…. 역시 장판이 최고다. 여러모로 힘든 하루였지만 독일에서의 첫 번째 날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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